[edaily 강종구기자]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향후 10년간 연 4% 수준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에서 나왔다. 최근의 투자 및 소비부진, 인구고령화, 금융부실 및 부동산거품 등 불안요인들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일시적인 경기침체가 아닌 장기적인 저성장 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경고다.
금융경제연구원은 16일 발표한 “우리경제의 장기성장기반 확충을 위한 과제”에서 한국 경제가 단순히 경기순환국면에서의 부진외에 장기적인 성장기반이 약화되고 있어 장기적인 구조적 저성장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기초적인 경제여건만을 놓고 보면 우리 경제는 향후 10년동안 연 4.5~5%의 잠재성장률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나 투자율과 경제활동참가율, 생산성 기여도가 현 수준에서 머물거나 더욱 하락할 경우 향후 10년간 잠재성장률이 연 3.9~4.1%로 떨어진다는 결론이다.
금융경제연구원은 특히 가계부채와 부동산 거품이 디플레이션과 금융불안을 초래할 위험이 높고 신용불량자 문제도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저해할 수 있다며 조기에 해소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잠재성장률은 경제가 인플레이션 압력을 받지 않고 도달가능한 최대 성장능력이다. 장기적인 평균 성장률은 결국 잠재성장률로 수렴하게 마련이다.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상회하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고 반대로 하회하면 디플레이션 위험이 커진다.
지난 90년대초까지 7%이상이었던 우리경제의 잠재성장률이 4%수준으로 떨어진다면 조금만 높은 성장에도 물가불안이 야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정부나 한국은행이 사용할 수 있는 경기부약책의 여지도 좁아진다.
금융경제연구원의 이같은 연구결과는 최근 한국은행이 내놓은 내년 경제 5.2% 성장이라는 장밋빛 전망과는 사뭇 대조되는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또 16일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외신기자클럽에서 강조한 “부동산 거품 충격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디플레이션 위험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장기성장 가로막는 불안요인
금융경제연구원은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상실됐다고 지적했다. 범용기술제품에서는 중국 등 후발국에 밀리고 선진국하고는 기술경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뚜렷하게 내세울 만한 제품이 없다. 반도체 휴대폰 등 우리 주력 상품의 경우에도 후발국의 추격으로 경쟁이 격화되고 있고 생명공학이나 초정밀기술 등 핵심기술은 선진국과 격차가 크다.
연구원은 기술과 생산성 향상이 없는 한 높은 성장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연구개발투자는 미국 독일 보다 높은 수준이면서도 기술수지는 OECD 24개국중 23위에 불과한 기술 후진국 신세다.
우수한 인적자원이 고갈되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인구는 고령화되고 출산율을 저하돼 양적 노동력이 감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고비용 저효율 교육투자로 질적 노동력도 부족한 문제가 초래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년간 42% 늘어났던 생산가능인구(15~65세)는 향후 20년동안 7% 증가에 그칠 전망이다. 교육비 지출은 OECD 국가중 가장 높은 수준이지만 대학졸업자의 공급이 수요를 초과해 청년실업을 양산할 뿐이다. 연구원은 고령화 등 인구요인만으로도 잠재성장률이 2020년 4%, 2030년 3%수준으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경제발전 초기의 기업가정신과 노동윤리의 쇠퇴도 걱정이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경영이 지나치게 보수화되어 미래를 위한 투자가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원은 최근 설비투자는 경기부진을 감안하더라도 장기평균 수준보다 약 30% 정도 하회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
연구원은 또 최근 집값 상승과 함께 가계부채가 크게 늘어나 주택가격이 급격히 하락할 경우 담보가치 하락에 의한 전형적인 자산 디플레이션이 야기될 것으로 우려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1년까지만 해도 일본 미국 등 선진국들보다 낮았으나 지난해말에는 일본을 넘어 미국과 비슷한 수준(84.1%)이다.
최근 아파트가격은 장기균형 수준에서 현저히 벗어나 있어 부동산 거품 붕괴를 우려케 한다. 가격상승폭은 80년대말 급등시보다 낮지만 임대료, 보수비용, 가계소득에 대한 상대가격 기준으로 보면 장기평균 수준에서의 괴리폭이 80년대말의 2배에 달한다는 지적이다.
구조적 저성장 진입가능성
우리 경제의 기초 경제여건만을 감안하면 향후 10년간 잠재성장률은 연 4.5~5%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부터 2008년까지의 잠재성장률은 5.0%, 이후 2013년까지는 연 4.8%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전망치는 생산성 기여율이 최근 3년 수준에 머문다고 가정할 경우 각각 4.7%와 4.5%수준으로 떨어진다. 2010년대 중반 이후에는 인구고령화 영향의 본격화 등으로 성장률이 낮아져 2020년경부터 선진국과 같은 3%대 성장에 진입할 전망이다.
(한국은행)
그러나 현재 우리경제가 안고 있는 불안요인들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잠재성장률 자체가 하락하거나 실제 성장률이 장기간 잠재성장률을 하회하는 구조적 저성장에 빠질 위험이 있다.
투자율과 경제활동참가율이 모두 현 수준에서 정체되고 생산성 기여도가 현 수준에 머물거나 더욱 하락할 경우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내년부터 2008년까지 4.1%, 이후 2013년까지 3.8%까지 떨어진다.
반대로 투자율이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고 경제활동참가율이 65%수준까지 상승하며 생산성 기여도가 90년대 수준을 회복한다면 잠재성장률도 향후 10년간 연 5.4~5.7%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