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났습니다]①김영수 관장 "해외선 한글 찬양, 국내는 한글 훼손 안타까워"

국내 유일 한글 전문 박물관
"한글 오염시키는 신조어·줄임말 지양했으면"
'한글실험프로젝트' 순회 전시 인기
"한글 관심 최고조…어디가나 환대받아"
  • 등록 2023-10-05 오전 6:00:00

    수정 2023-10-05 오후 2:25:28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해외에 나갔을 때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왔다고 하면 엄청난 환대를 받아요. 헝가리, 이집트, 폴란드 등을 방문했는데 한글에 대한 그들의 높은 관심에 정말 놀랐죠. 반면 세종대왕께서 백성을 가엾게 여겨 서로 잘 소통하라고 만든 한글이 국내에서는 줄임말, 신조어 등으로 많이 파괴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김영수 국립한글박물관장은 ‘한글의 우수함’을 강조하면서도 최근의 한글파괴 현상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오는 9일 ‘한글날’을 계기로 한글의 소중함과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겼으면 한다는 바람도 전했다. ‘한글의 날’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해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하고, 우리 글자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국경일이다. 이날만큼은 다른 어떤 곳보다 국내 유일의 한글 전문 박물관인 ‘국립한글박물관’이 인기다. ‘한글의 날’을 전후해서 매년 7000명 이상의 관람객이 박물관을 방문해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을 즐긴다.

최근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에서 만난 김영수 관장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알딱깔센’(알아서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 잘해라)이나 ‘어쩔티비’(어쩌라고, 가서 티비나 봐) 등의 줄임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쓰여서 우리말인데도 못 알아들을 때가 있다”며 “한글의 오염수준까지 문자를 훼손하는 현상은 앞으로 사라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수 국립한글박물관장이 한글 조형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방인권 기자).
“우수한 한글, 무관심 아쉬워”

전 세계가 인정하는 우수한 문자이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언어학연구소에서 세계 문자들을 대상으로 합리성, 과학성, 독창성 등의 기준으로 순위를 정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한글이 당당히 1등을 했다. 1990년부터 유네스코에서는 매년 문맹퇴치에 공을 세운 이들에게 ‘세종대왕 문해상’을 수여하고 있다. 유네스코에서 조선시대 왕의 이름을 딴 상을 제정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유네스코에서 ‘세종대왕 문해상’을 제정한 것은 그만큼 한글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방증이에요. 하지만 국내에서는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기에 그 가치와 소중함을 모르고 사는 게 대부분이라 아쉽죠. 한글은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기본 글자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과학적이고, 소리가 세질수록 ㄱ에서 ㅋ으로 한 획씩 늘어나는 원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체계적이에요. 한글의 초성, 중성, 종성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글자가 1만1172자나 된다는 점은 정말 놀랍죠.”

국립한글박물관의 기획전시나 프로그램은 이러한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근 선보였던 기획특별전 ‘어린이 나라’에서는 한글잡지 ‘어린이’ 등을 통해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정신을 알기 쉽게 전했다. 1923년부터 1935년까지 발간한 총 122권의 잡지 중 두 권을 제외한 120권을 한 자리에 모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6일까지 열리는 ‘한글문화산업전시회’는 한글문화상품 등을 통해 한글의 산업과 미래에 대해 전망해 볼 수 있는 전시다.

“국문학자 홍윤표 교수는 한글을 일컬어 한국문화를 직조하는 씨줄과 날줄이라고 했어요. 한글은 우리의 문화와 정체성을 담아내는 그릇이죠. 이제는 더 나아가 한글의 가치를 통해 세계문화의 다양성과 창의성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영수 국립한글박물관장이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방인권 기자).
한국어 강좌 500명 몰려…“K한글 세계화되길”

K컬처의 확산에 힘입어 한글의 인기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한류 콘텐츠의 인기 덕분에 해외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고, 외국에서 ‘사랑해요’ 등의 한글 단어가 사용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도 한글과 한국어에 대한 관심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2022년 일본 7개 도시에서 주일한국문화원이 개최한 스피치 콘테스트에는 800명이 넘는 학생과 일반인이 참석했다. 일본 문화원에서 운영하는 세종학당 한국어 강좌는 올해 처음으로 한 학기에 500명 넘는 인원이 수강했다.

김 관장은 “예전에는 현지에서 통역을 해주는 사람이 한국 사람이었는데 최근에는 현지인이 직접 한국어를 통역하더라”며 “이집트 대학에서는 1등을 한 학생이 한국학과를 간다고 한다. 현지 교수님들도 매우 정확한 한국어를 구사해서 놀랐다”고 전했다.

유럽과 아시아 순회 전시였던 ‘한글실험프로젝트’에 대한 현지의 반응도 달라진 분위기를 실감케 했다. 디자인·예술 현장에서 활약하는 작가들이 근대 한글의 변화상을 재해석하고, 국립한글박물관의 근대 시기 소장품을 기반으로 창작한 작품을 선보였다. 서양인이 쓴 한국어 문법서 ‘한어문전’을 패션 디자인으로 재해석한 이청청 작가의 ‘낯섦과 새로움, 그리고 연결’, 근대 한글 서체를 옻칠 공예에 담은 유남권 작가의 ‘지태칠기 한글시리즈’ 등을 본 중국 문화예술 관계자들은 한글의 미적 아름다움과 예술성에 놀라움을 표했다.

김 관장은 “베이징 현지의 교민들도 한글의 디자인적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한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됐다며 자랑스러워 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최근 전 세계적으로 K팝 등 우리의 문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며 “이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한글도 머지않아 세계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수 국립한글박물관장은 누구

△1967년 출생 △문화체육부 문화정책과 행정사무관 △문화관광부 장관비서관, 주시드니한국문화원장, 국제관광과장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문체부 문화예술정책실 예술정책관 △문체부 콘텐츠정책국장, 기획조정실장 △국립한글박물관 관장(현)

김영수 국립한글박물관장(사진=방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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