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하게도 똑같은 일이 사모펀드 천국 미국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다. 지난 23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강력한 사모펀드 규제안을 최종 확정한 것이다. 주된 방향은 우리나라처럼 투명성 강화를 통한 투자자보호이다. 운용자산이 1억5000만 달러 이상인 SEC 등록 사모펀드운용사는 펀드별로 운용성과와 수수료, 비용 세부 사항을 담은 분기보고서를 투자자에게 제공해야 하고, 반드시 외부감사를 받도록 했다. 여기까지는 판매사 감시의무를 제외하면 우리나라와 유사하다.
하지만 더 엄격한 내용도 있다. 무엇보다 규제 대상이 포괄적이다. 적용 대상을 일반투자자 대상 사모펀드로 한정한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기관투자자 대상 사모펀드도 포함된다. 또한 지분 거래시 공정가치 평가를 받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자문업자는 해당 가치평가기관과의 관계를 소명해야 한다. 투명성이 떨어지는 비용 규제도 크게 강화했다. 운용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사모펀드 자문업자들은 앞으로 투자자의 동의 없이 준법, 검사, 제재 등에 지출한 비용을 사모펀드가 부담하는 것을 금지했다. 규제안에서 특히 논란이 된 조항은 특정 투자자 우대 계약을 규제한 것이다. 특정 투자자를 우대할 경우 그 내용을 공개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전 규제 강화는 금융시장 구조변화에 대한 두 가지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는 사모펀드가 너무 커졌다는 인식이다. 겐슬러 SEC 의장은 올 초 헤지펀드협회 연설에서 사모펀드시장이 은행산업보다 커진 현실에 우려를 나타냈다. 실제 2022년 미국 사모펀드 운용자산은 26조 달러로 상업은행 총자산 22조 달러를 능가했다. 2021년부터 시작된 사모펀드와 은행의 역전현상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업은행 규제에 신경 쓰는 동안 초저금리 환경 속에서 풍선처럼 사모펀드시장이 급성장했고, 금융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그림자금융시장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사모펀드는 은행 자산(3700조원)의 15% 수준(560조원)이다. 미국처럼 사모펀드의 금융안정 위험을 경계할 상황은 아니다. 그런데 공적연기금의 대체투자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어 국민의 노후자금인 공적연기금과 사모펀드의 상관성이 높아지고 있는 점은 부담이다. 국민의 노후자산을 위해서도 사모펀드의 성과와 비용에 대한 투명성에 의심이 없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공적연기금의 대체투자 투명성을 정책감사로 관리하고 있다. 결과 중심의 정책감사는 시장 활력을 위축시킨다. 기관전용 사모펀드에 대해서도 투자자보호를 강화한 미국의 규제 방향이 시장 효율과 생태계 활력에 부정적인 결과중심의 감사보다 오히려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