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쇳밥일지’(문학동네)는 수도권 바깥 지방 실업계고-전문대 출신 청년의 솔직한 회고록이자, 90년생 용접공이 쓴 지방 노동 현장의 생생한 보고서다. 흡사 피 냄새를 연상케 하는 쇳내 나는 현장의 밀착 일지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근 몇 달 동안 출판계에서 회자하는 책 중 한 권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우리가 진짜 들어야 할 이 시대 청년 목소리”라며 이 책을 추천했다. 2022년 버전 전태일 평전의 등장이란 극찬도 나왔다. 주야 교대 68시간 공장 근무를 월 170만 원과 맞바꾼 삶.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해 잊고 있던 변방의 그곳에는, 여전히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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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작가에게 서울 생활을 물었더니 “별로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자리 잡느라 즐길 틈이 없었다는 말이 맞겠다”며 “여유가 생기면 인싸(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의 삶도 경험해봐야 하지 않을까. (웃음) 공장 다닐 때와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철없고 실수하면 보완하면서 한발 한발 밟아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첫 책의 반응은 뜨겁다. 그는 “중쇄를 찍었고, 아마 1만부 정도 나간 것 같다”면서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추천을 받은 날 딱 하루 기분이 엄청 좋았는데 이후로는 부담돼서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고 고백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쓴 일기가 글 쓰는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는 “워낙 이사를 많이 다니다 보니 집에 오면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중학교 땐 인터넷 소설이 인기였는데 여자애들한테 잘 보일 수 있다는 생각에 쓰기 시작했다”면서 “이후 가난을 벗어나려고 공장을 다녔는데 동료가 산재를 당했다. 그때부터는 언젠가 세상에 알리겠다는 심장으로 현장을 촘촘하게 기록했다. 그러던 중 연재 글을 보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고 했다.
실업계 교육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현장에서 겪는 부조리를 스스로 방어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이다. 천 작가는 “전문대를 나왔어도 4대 보험 적용 같은 내용을 잘 몰랐다”며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선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산재는 초보가 당할 확률이 높은데 결국 위험한 현장은 초보가 들어가는 구조다. 지겨울 정도로 꼭 알아야 할 노동법을 반복적으로 학습하게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독자들에게는 “지금도 그곳에서 성실히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잘했고, 잘못 살았다를 떠나 그 너머 그런 삶이 이어지고 있다는 맥락을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며 이 책이 그렇게 읽혔으면 좋겠다고 했다.
매달 갚아나갔던 어머니의 빚은 이번에 인세를 더 받게 되면 다 갚게 된다고 전했다. 앞으로의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그는 “뚜렷한 목표 없이 ‘수도권’을 경험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왔다”며 “헤매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소설은 처음 청탁을 받아 쓰게 됐다. 회사 생활이나 청년주택 얘기도 하고 싶다. 아직 구체화한 건 없지만, 꿈을 찾는 작업이 될 것 같다”고 웃었다.
천 작가는 이제 공장 청년을 벗어나 타인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포부도 전했다. 그는 “현장의 서사를 팔아 공장의 삶을 묘사했다면, 이제 타인의 목소리를 듣는 게 내가 할 일”이라며 언젠가는 고향 마산으로 돌아가 지역에 기여하고 싶다고도 했다. 천 작가는 “지역을 알리는 일은 끝냈다. 다음에 뭔가 내가 지역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돌아갈 생각”이라면서 최근 논란을 의식한 듯 “그런데 잘 못하고 있어 동료 선후배들에게 죄송할 뿐이다.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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