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끄덕끄덕]대면의 추억

  • 등록 2022-03-17 오전 6:34:43

    수정 2022-03-17 오전 6:34:43

[정덕현 문화평론가]“박수 질러!” 지난 13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서울’ 공연에서 리더 랩 몬스터(RM)는 자주 그렇게 외쳤다. 보통은 “소리 질러!”였을 테지만 이 날 “박수 질러!”가 된 건, 코로나19 때문이었다. 2년여 만에 열린 대면 콘서트라고는 해도 함성과 기립이 금지된 공연. 관객들은 한 손에는 아미밤(불빛이 나오는 응원봉)을 다른 한 손에는 클래퍼(박수소리를 크게 내는 응원도구)를 들고 BTS의 공연을 응원하는 것으로 호응을 대신했다.

코로나 이전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BTS의 공연을 직관할 기회가 있었던 필자로서는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당시 공연은 관객들의 박수와 함성 같은 리액션에 의해 완성된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 바 있다. 아미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마치 거대한 파도가 밀어닥치듯 쏟아져 나오는 함성 소리, 그리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관객들의 모습까지 모두가 공연의 한 부분처럼 여겨졌다. 그게 사라진 풍경. 공연의 주인공인 BTS 멤버들도 소회가 없을 수 없었다. 지민은 “모든 걸 표현할 수 없어 속상하다”고 했고 랩 몬스터는 “자괴감도 느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것조차 언젠가는 추억이 될 날이 있을 거라며 포스트 코로나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이 공연을 필자는 온라인으로 봤다. 약 2년여 간 코로나19로 인해 콘서트가 대부분 취소됐고, 그래서 대안적으로 마련된 온라인 콘서트들을 몇 번 경험한 바 있다. 사실 보기 전까지만 해도 전혀 기대감이 없었다. 8,90년대 록에 심취해 있던 필자에게 공연이라고 하면 관객들이 날아다니는(?)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이나 메탈리카(Metallica) 공연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러니 온라인으로 직접 체감할 수 없는 공연을 과연 공연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런데 10센티의 온라인 콘서트를 직접 들어가 보면서 이게 색다른 맛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아마도 디지털 네이티브들에게 익숙한 경험일 테지만, 아바타로 입장해 갖가지 이벤트도 벌이고 댓글도 나누는 콘서트. 게다가 원하는 방향에서 볼 수 있게 카메라 화면도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장점이 온라인 콘서트에는 있었다. 실제 공연장에 가면 맨 뒤에서는 무대 위 가수 얼굴이 보이지도 않아 결국 거대한 전광판에 의지해 공연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바에는 온라인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런데 온라인 공연을 몇 번 보면 볼수록 남는 허전함은 점점 커졌다. 공연의 맛은 무대 위 가수들의 퍼포먼스를 보는 것만큼 그렇게 한 공간에 모여 그 공기를 직접 느끼고 경험하는 ‘대면’에 있다는 걸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됐다.

오미크론이 거의 정점을 향해 가고 있고, 그래서 ‘위드 코로나’의 시대로 넘어가는 상황 속에서 대중들의 ‘대면 욕구’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가고 있는 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름으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함께 식사 테이블에도 제한인원만 앉아 제한된 영업시간까지만 있을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을 2년이 넘게 해온 셈이다. 그러니 육체적으로도 또 심적으로 지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도무지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던 작년까지만 해도 이 사회적 거리두기, 즉 비대면을 애써 긍정적인 관점으로 보려는 시각들이 존재했다. 코로나19라는 복병이 나타나 등을 떠밀어 급속도로 이뤄진 것이지만 비대면 사회는 디지털 기술과 맞물려 사실상 예정된 미래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19 이전에도 영화관이나 식당 등에서 이미 키오스크가 활용되고 있었고 또 무인상점들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다. 코로나19 상황 깊숙이 들어서면서 이러한 비대면 방식은 훨씬 더 확장되었고 어떤 지점에서는 편리한 면들이 없지 않았다. 예를 들어 커피 하나를 시켜도 직접 카페를 찾아가 주문하고 받던 시절에서 지금은 내려 받은 앱으로 미리 주문하고 나온 음료를 찾아가는 방식이 익숙하고 편리해졌다. BTS 공연을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외국까지 나가야 되던 팬들은 이제 온라인으로 손쉽게 공연을 볼 수도 있게 됐다.

하지만 제아무리 이러한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려고 해도 사람이 가진 ‘대면 욕구’는 거의 본능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최근 방영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tvN <어쩌다 사장2>를 보면 우리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얼마나 사람들 간의 대면 접촉을 그리워했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전라남도 나주 공산면의 한 할인마트를 사장님들을 대신해 열흘 간 맡아주며 벌어지는 일들을 담아내는 이 예능 프로그램은, 사실상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장면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특징을 갖고 있다. 지역 마을을 찾은 차태현, 조인성 같은 연예인들이 신기할 수밖에 없는 주민들이 마트를 찾아와 물건을 사고 음식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를 마치 ‘불멍’이나 하듯이 멍하게 바라보게 된다. 별 일도 아니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모습들이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을 잡아 끌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반의 사회로 예고된 미래는 실제로도 ‘비대면 사회’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디지털로 연결된 네트워크 속에서 우리는 훨씬 더 많은 숫자의 이름들과 쉽게 연결되겠지만, 그들과 직접 대면하는 일들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이건 아마도 지금 우리 모두가 이미 경험하고 있는 일일 게다. 각자의 휴대폰을 열어보라. 거기 많게는 천 명 가까이 되는 이름과 전화번호가 들어 있지만, 그들 중 진짜 친해서 만나는 인물은 몇 안 되는 걸 확인할 수 있을 테니. 그래서일까. 비대면 사회로 성큼 들어가고 있는 이 흐름 속에서 정반대로 ‘대면 욕구’ 또한 만만찮게 커지고 있다는 걸 절감하게 된다. 결국 사람 인(人)자에 담긴 것처럼 사람은 서로 기대고 맞대서야 본성에 가까워지는 존재가 아닐까. 만일 비즈니스를 하는 분들이라면 모두가 비대면을 향해갈 때, 반드시 대면이어야 하는 영역들에 오히려 더 큰 기회가 있을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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