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인천하' 김희수-이승훈 "대통령, 순우리말은 우두머리"

"'바꾸자' 아니라 우리말이니 알고 쓰자는 생각"
B급 감성으로 우리말 어원 전해 호응 늘려가
  • 등록 2022-01-03 오전 5:43:00

    수정 2022-01-03 오전 8:25:02

이승훈(왼쪽) 작가와 김희수 KBS 아나운서가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KG타워 이데일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김태형 기자)
[이데일리 김은구 기자]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일본에서 비롯된 거 아세요? ‘프레지던트’(President)라는 영어 단어를 중국어권에서는 ‘총통’, 일본에서는 ‘통령’이라고 번역해 썼대요. 우리는 ‘통령’ 앞에 ‘큰대(大)’를 붙여 대통령이라고 한 거죠.”

팟캐스트 팟빵의 ‘우리말의 골때리는 기원을 찾아 ‘어인천하’’(이하 ‘어인천하’)를 진행하는 김희수 KBS 아나운서와 이승훈 작가의 설명이다. 2022년을 시작한 지금, 대한민국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제20대 대통령 선거다. 대통령의 사전적 의미는 ‘외국에 대해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원수. 행정부의 수반’. 김희수 아나운서와 이승훈 작가는 대통령과 같은 의미의 순우리말로 ‘우두머리’를 꼽았다. ‘어떤 일이나 단체에서 으뜸인 사람’, ‘앞장서서 이끌어가는 사람’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한자와 결합시키면 ‘앞전(前)’자를 붙여 ‘전머리’라고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대통령’을 ‘우두머리’로 바꾸자는 게 아니에요. 다만 단어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 어원이 어디인지 알고 쓰자는 거죠.”

두 사람은 이 같은 작업의 필요성에 대해 “우리말이니까”라고 입을 모았다.

우리말로 방송을 하는 아나운서와 우리글로 대본을 쓰는 작가의 조합이다. ‘어인천하’의 이유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게다가 김희수 아나운서는 KBS 한국어연구부 전 연구사업팀장이다. ‘아나운서는 우리말과 관련해 다른 사람이 물어보면 답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김희수 아나운서가 갖고 있는 사명감이다. 우리말로 프로그램을 하는 것에도 열망이 있었다. 두 사람은 지난 2008년 KBS 라디오 ‘지식충전소’를 하며 만났고 우리말 팟캐스트 ‘어(語)!벤져스:똑바로 말해라’도 함께 했다.

아나운서들이 출연해 사례를 들어가며 ‘바른 우리말’의 사용을 권장하는 캠페인성 코너들도 방송된다. 그러나 이승훈 작가는 이 같은 방식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게 우리말이니 쓰세요’한다고 사람들이 얼마나 관심을 갖겠느냐는 게 이승훈 작가의 반문이었다.

이승훈(왼쪽) 작가와 김희수 KBS 아나운서가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KG타워 이데일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김태형 기자)
둘은 ‘재미있는 걸 찾아보자’고 의기투합해 ‘수다를 떨며 어원을 찾아가는’ 형태로 ‘어인천하’를 지난해 6월 개설했다. 기존 ‘어!벤져스’가 공급자 마인드에서 자신들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소비자들의 흥미를 유도하는 방식을 취했다. 기존 방식이 ‘정통’이었다면 지금은 ‘B급’인 셈이다.

단어의 어원만 알려주면 기존 우리말 방송 형식과 차이가 없고 재미를 주기도 쉽지 않을 터다. 어원이라는 팩트와 현재 단어의 간극에 대해 두 사람은 상상력을 동원해 픽션을 넣는다. 방송에서 뉴스 진행 등을 통해 바른 이미지가 있는 김희수 아나운서도 ‘어인천하’에서는 B급에 맞춘 부캐로 거침없이 수다를 떤다.

인터뷰 중에도 “기성세대는 ‘노래방 18번’이라는 말을 썼는데 이것도 일본에서 온 표현이다. 우리말로 하면 ‘애창곡’이 맞는데 요즘 세대는 ‘최애곡’, 더 젊은층은 ‘0번’이라고 한다”, “‘주작’이 표준어다”, “짬뽕은 일본에 짠뽕에서 비롯됐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애초 초마면이라고 불렸다” 등 흥미를 끄는 말들을 쏟아냈다. 그 동안 방송의 결과물이다.

‘어인천하’는 이제 6개월이 좀 지났는데 구독자는 1000명을 바라보고 있다. 아직 ‘어인천하’를 통해 수익이 나지는 않는다. 제작을 위해서는 스튜디오를 잡아야 하는데 비용이 들어간다. 두 사람은 이를 직접 충당한다. 이승훈 작가는 “수익을 내지 못해도 둘이 신나서 방송을 한다는 게 재미있고 좋다”며 “더 이상 할 게 없다 싶으면 몰라도 아직은 ‘어인천하’의 끝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희수 아나운서는 ‘왕 전문’으로 유명한 배우 임호, 이승훈 작가는 과거 한국 코미디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탱자 가라사대’의 고 김형곤을 연상케 한다. 둘의 조합은 영상 콘텐츠로도 충분히 매력이 있을 듯했다.

“‘어인천하’ 시즌2, 시즌3도 지금과 다른 형태로 만들어 보고 싶고요. 우리말이 갖고 있는 무기가 정말 많다는 걸 갈수록 느끼고 있습니다. ‘어인천하’를 하면서 간식 먹듯이 소비할 수 있는 우리말 관련 이야기들을 담은 책을 내고 싶다는 목표도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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