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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중부경찰서 직장협의회장인 김기범 경사는 지난달 30일 인권위 홈페이지를 통해 김창룡 경찰청장과 이문수 경남경찰청장이 직원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취지의 진정을 냈다. 김 경사는 김 청장 등이 헌법 제10조에서 규정한 ‘행복추구권’과 ‘국가의 개인에 대한 기본적 인권 보장 의무’ 등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김 경사는 9일 이데일리와 전화인터뷰에서 “청장님은 백신 접종을 ‘자율에 맡기겠다’고 하셨지만, 그 이후에 일어난 과정을 보면 접종이 과연 자율이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지휘부가 각 경찰서 혹은 각 과·지구대 백신 접종 예약률을 서로 비교하며 일선 경찰관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했다”고 밝혔다.
앞서 방역 당국은 지난달 26일부터 경찰·해양경찰·소방 등 사회 필수 인력 중 만 30세 이상인 이들에 대한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김 청장은 접종이 시작되자 전국 시·도 경찰청장 화상회의에서 직원들이 접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경사는 “인사권자가 접종 예약률 경쟁을 하고 있으니 일선에선 백신 접종을 거부하고 싶어도 거부할 수 없었고, 일부 경찰관들은 마지못해 백신을 맞기도 했다”며 “경찰관 개인에게도 백신 접종 여부를 선택할 자유가 있는데, 그 자유를 이런 과정에서 반강제적으로 박탈당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경사는 경찰이 경찰관 개인의 백신 접종과 관련한 정보를 제대로 된 절차 없이 수집하고 있다고도 비판했다. 그는 “백신 접종 여부는 업무와 관련되지 않은 개인의 민감한 생리적 정보”라며 “업무와 관련된 정보가 아닌데도 무분별하게 취합하는 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침해 금지’를 규정한 헌법 제17조를 어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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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에서 근무하는 경찰관들에게서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들을 수 있었다. 서울 시내의 한 지구대에서 일하는 40대 경찰관은 “인사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싶어 백신을 맞았고, 주변에도 이 때문에 접종한 사람이 꽤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관 역시 “아무래도 조직 사회다 보니 눈치가 보여 백신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김 경사는 지난 6일 인권위 진정 사실을 경찰 내부 게시판인 ‘폴넷’에 알렸는데, 해당 글에도 ‘용기를 내지 못했는데, 대신 용기를 내줘 고맙다’ 등의 댓글이 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김 경사는 “(인권위 진정 사실이 알려진 이후) 주변 동료로부터 ‘고맙다’는 전화를 많이 받았고, 내부 메신저로도 비슷한 내용의 메일을 많이 받았다”고 언급했다.
경찰이 백신 접종에 앞서 제대로 된 원칙을 세웠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겉으로 내세운 바와 실제 (백신 접종을 시행하는) 방향이 맞지 않으니 불만이 제기된 것 같다”며 “백신 접종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비대면 접촉 업무로 전환하는 등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다는 원칙을 먼저 밝혔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오 교수는 “(윗선에서) 백신 접종을 경쟁으로 보고 경찰서·지구대별로 비교하면서 접종을 독려하면, 자연스럽게 일선 경찰관들에겐 (백신 접종이) 스트레스가 될 수밖에 없다”며 “아무리 경찰 조직이라지만, 이런 부분까지 강압적으로 실적 비교를 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경찰은 백신 접종을 강요하지 않고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백신을 우려하는 일부 목소리를 이해하지만, 백신 접종은 어디까지나 자율”이라며 “접종이 시작된 뒤 ‘백신을 맞아도 아무 문제없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편, 경찰 조직 내 반발 속에 접종 대상자 중 71.72%는 1차 접종을 마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접종 대상자 11만7579명 중 8만4324명이 백신을 맞았다. 이는 예약자 중 98.7%가 접종한 것이다. 백신 접종을 예약한 경찰관은 8만5441명(72.67%)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