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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인사인 옐런 장관은 통화정책 결정 권한이 없다. 다만 인플레이션 우려에 선을 긋는 연방준비제도(Fed)를 향한 월가의 의구심이 끊이지 않는 와중에 바이든 정부의 경제 수장 격인 옐런 장관이 긴축을 암시하고 나선 탓에 더 주목 받았다. 당장 미국 증시는 기술주를 중심으로 급락하며 즉각 반응을 보였다.
옐런 “금리 인상 필요할 수도”
옐런 장관은 4일(현지시간) 미국 시사잡지 ‘더 애틀랜틱’과 인터뷰에서 “경제가 과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금리를 다소 인상해야 할지 모른다”고 밝혔다.
CNBC에 따르면 미국 의회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5조3000억달러(약 6000조원) 규모의 추가 부양책을 처리했다. 본예산 외에 이 정도의 추가 재정 지출을 단행한 건 전례를 찾기 어렵다. 이에 따라 미국은 2021 회계연도 상반기 1조7000억달러의 재정적자가 발생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여기에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인프라 등의 투자에 4조달러의 추가 재정 확대를 발표했다. 월가 내에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이다.
옐런 장관은 “추가적인 재정 지출은 미국 경제 규모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작을지 모른다”면서도 “이는 매우 완만한(very modest) 금리 인상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옐런 장관이 금리 인상 가능성을 직접 거론한 건 그 자체로 이례적이다. 2년 이상 중장기 시계로 시행하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금리 인상,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등 긴축 논의 가능성을 두고 “시기상조”라고 말해 왔다. 연준 의장의 말을 재무장관이 뒤엎은 모양새가 나온 것이다.
옐런 장관의 발언이 더 힘을 받은 건 월가의 인플레이션 경고음이 더 커지고 있어서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릭 라이더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이날 CNBC에 나와 “모든 고객들이 경기 과열에 대해 문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지난 1일 연례 주주총회에서 “우리는 상당한 인플레이션을 보고 있다”고 말하며 인플레이션 논쟁에 다시 불을 질렀다. ‘월가 황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은 최근 한 세미나에서 “예상보다 빠르게 성장이 일어난다면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6%대까지 급등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로버트 캐플런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이날 마켓워치와 인터뷰에서 “자산 매입을 조정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는 게 합리적”이라며 테이퍼링 논의를 주장했다. 캐플런 총재는 연준 내 대표적인 매파 인사다.
옐런 장관의 언급에 시장은 화들짝 놀랐다. 이날 뉴욕 증시에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1.88% 급락한 1만3633.50을 기록했고, 중소형주 위주의 러셀 2000 지수는 1.28% 내린 2248.32를 나타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0.67% 하락한 4164.66에 마감했다. 긴축 가능성이 불거지자 역사상 최고점에 있는 주요 지수가 조정을 받은 것이다.
가장 타격을 받은 건 주요 기술주였다. 애플 주가는 전거래일 대비 3.54% 내린 127.85달러에 마감했다. 테슬라와 아마존 주가는 각각 1.65%, 2.20% 내렸다.
에버코어 ISI의 데니스 드부셔 전략가는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고 말하는) 연준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며 “물가 상승 기대는 이제 역풍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예상보다 파장이 커지자 옐런 장관은 장 마감 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금리 인상을) 예측하거나 권고한 게 아니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는 “연준의 독립성을 인정한다”며 “인플레이션이 생기더라도 연준은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옐런 장관은 2014~2018년 4년간 연준 의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