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구병모 "차별·혐오 넘어선 날갯짓…'꿈'이 모티브 됐죠"

익인 소재로 한 '버드 스트라이크' 출간
두 주인공 통해 새로운 가능성 제시
"환멸 정서 표출…일상 불안 글에 녹여"
  • 등록 2019-04-01 오전 6:00:01

    수정 2019-04-01 오전 6:00:01

작가 구병모(사진=창비).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그는 눈앞에 튕겨 나간 적을 바라본다. 몸이 작은 대신 그 몸의 곱절에 이르는 날개를 펼친 사람이 달빛 아래 서 있다. ‘익인’(翼人)이다. 익인의 빛나는 눈에는 적의가 담겨 있지 않다. 그 사실을 확인하자, 엄습하는 위험과 죽음의 가능성에 저항하기 위해 버티고 섰던 한쪽 다리에 힘이 빠져나갔다.”

‘위저드 베이커리’로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작가 구병모(42)가 새로운 영어덜트 소설 ‘버드 스트라이크’(창비)로 돌아왔다. 인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날개가 있고 치유의 능력을 지닌 익인을 소재로 삼았다. 제목인 ‘버드 스트라이크’는 조류가 비행기에 부딪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소설에서는 익인 스스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벌이는 투쟁과 충돌의 의미로 쓰였다.

구 작가는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즐길 수 있는 영어덜트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다. 흥미로운 판타지를 매개로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작가의 필력은 이번 소설에서도 빛을 발한다. 구 작가는 “‘혐오를 치유하는 날개’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며 “전작들에서 사회에 대한 문제적인 생각들을 다뤘다면 이번엔 나 자신을 위한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극대화했다”고 말했다.

◇비오와 루의 우정…“새로운 가능성 보여줘”

이번 소설은 구상을 시작한 지 7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처음 이야기의 시작은 잊을 수 없었던 ‘꿈’에서 비롯됐다.

“2011년 9월 어느 날 꿈을 꾸고 나서 잊어버리기 전에 노트에 꿈의 내용을 기록해 뒀다. 꿈속에서 영주의 따님과 하늘을 날 수 있는 아이가 등장했다. 하늘을 날 수는 있는데 다만 날개가 없었다. 이 친구를 날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7년 전 꿈속의 일을 소재로 삼았을 뿐 실제 집필한 시간은 1년 남짓이다.”

자연과 조화된 삶을 사는 익인 공동체와 첨단기술로 착취와 폭력을 일삼는 도시인이 대립하는 가상의 세계가 배경이다. 작은 날개로 태어난 ‘비오’는 도시를 습격하다 붙잡혀 청사에 갇히게 되고, 도시소녀 ‘루’를 만나 탈출한다. 서로 배타적인 사회에서 자라났지만 점차 마음을 여는 두 주인공을 통해 차별과 혐오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적으로 꿈에서 모티브를 따왔기 때문에 어떤 목적의식이나 전략이 앞서지 않았다. 일상과 사회에서 느끼는 불안이 자연스럽게 글에 녹아드는 것 같다. 판타지세계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구 작가는 우리를 둘러싼 사회의 불만과 불신 등의 문제를 끊임없이 다뤄왔다.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첫 소설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는 가정폭력 문제를, ‘네 이웃의 식탁’에서는 돌봄 노동의 문제점을 들여다봤다.

“기성세대를 부숴야 내가 산다는 전복의 의지는 인류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다. 내 소설에서는 변혁이나 혁명 같은 역동적인 정서보다 일관되게 환멸의 정서를 표출해왔다. 누군가 요즘 관심사를 물어보면 ‘이미 멸망했다고 생각되는 이 세계에서 어떻게 겸손하게 죽어갈 것인가’라고 답한다. 이번 소설에도 자세히 찾아보면 이런 정서가 어딘가에 분명 들어가 있다.”

구병모 작가(사진=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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