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최근 서울 용산은 육군본부가 개최한 ‘장군에게 전하는 용사들의 이야기’ 세미나 건으로 약간의 긴장과 흥분이 감돌았다. 이날 세미나는 병사들이 의제를 선택하고 발제내용을 결정한 창군 이래 첫 번째 토론회였다.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한 군단장과 수많은 장군들을 앞에 놓고 병사들은 격한 발언을 쏟아냈다.
“대한민국 육군처럼 병사의 자유를 1에서부터 10까지 철저히 통제하는 군대는 없다”는 질책에서부터 “용사를 통제와 후견의 대상, 금치산자(禁治産者)로 보고 있다”는 뜨끔한 비판이 이어졌다. “가장 젊은 조직인 육군이 가장 젊지 않은 방식으로 청년들을 방치하고 있다”는 발언은 오히려 들을만했다. 급기야 “용사들은 자긍심을 잃었고, 육군은 신뢰를 잃었다. 어떻게 이런 군대로 필승을 기대할 수 있겠냐”는 뼈아픈 지적까지 나왔다. 이 정도로 ‘격하게’ 말해도 문제가 없을까 싶을 정도였다. 발표자 가운데 제대를 앞둔 병장도 있었지만, 앞날이 창창히 남은 일병과 상병도 발언에 거리낌이 없었다. 이렇게 솔직한 발언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우리 육군이 그만큼 열려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열린 육군을 만들겠다는 결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육군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또 다른 장면은 지휘관 리더십 다면평가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육군은 지휘관과 참모의 리더십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온라인 리더십 진단체제 2.0’의 개발을 완료하고, 이달 초부터 운용하기 시작했다. 육군이 지향하는 W 리더십을 중심으로 설문이 구성되어 있는데, 본질은 다면평가다. 상관은 말할 것도 없고 하급자, 심지어 행정병과 운전병과 같은 병사들도 지휘관 평가에 참여하게 된다. 시작단계라 인사에는 직접 반영되지 않지만, 그 효과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대학에서 처음 강의평가가 도입됐을 때도 그랬다.
지금까지 우리 군 인사에서 직속상관의 평가가 과도하게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다보니 상관에 대한 충성이 유독 강조되었다. 충성과 복종이 군대조직의 본질이기는 하나, 비판적인 인재를 걸러내는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온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동료나 하급자에 의한 다면평가가 본격적으로 실시된다면, 상관에게만 잘 보인다고 진급할 수 없을 것이다. 다면평가에 의해 공정성이 강화된다면, 고질적인 출신 편향적 인사에 대한 불만도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일반 병사들의 위장크림 사용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것도 반가운 소식이다. 위장크림은 실질적인 효과에 비해 피부 자극 등 불편이 많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실효성이 없는데 관행처럼 강요해 왔던 것이다. 우리 병사들이 군을 불신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불합리한 것을 고집해왔기 때문이다. 기존의 규범과 관행에 대해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가 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과감히 개선하는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육군의 변화가 ‘개방성’과 ‘공정성’, 그리고 ‘합리성’의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칭찬할 만하다. 이러한 가치야말로 성공하는 모든 조직이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와 가치를 우리 육군의 위계구조 내에 어떻게 착근시키느냐 하는데 있다. 병사들의 소통이 일회적 행사로 끝나지 않고, 어떻게 현장에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보여주기 식 행사가 아니라, 각급 부대로 소통의 정신이 확산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한 이유다. 인사의 공정성과 부대 운영의 합리화 역시 마찬가지다. 실질적인 효과와 지속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제도와 조직이 있어야 한다.
또 다른 염려는 개혁의 지속성이다. 김용우 총장이 중심이 되어 육군은 많은 변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지휘관이 바뀌면 또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이런 우려를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개혁의 방향과 내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合意)다. 개혁의 모든 내용에 대해 모두가 합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개혁의 방향에 대해서는 육군의 장교단이나 국방 전문가 서클에서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의 합의와 지지가 있어야 지속가능한 개혁이 가능하다. 개혁을 밀고 가는 추동력의 본질은 사회적 합의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