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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째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고 있다는 취업준비생 신모(25·여)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최근 국제 세미나 행사 요원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는 그는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어학 성적이 높지 않고 컴퓨터 관련 자격증이 없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프랜차이즈 카페 아르바이트 모집에서도 쓴 맛을 봐야 했다. 가게 주인은 “커피 기계를 능숙하게 조작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며 그를 돌려보냈다.
어학원 조교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던 김모(24·여)씨는 한 어학원이 내건 조건에 혀를 내둘렀다. 토익 900점 이상·유창한 어학 실력·MS워드 및 파워포인트 능숙 등 지원 조건이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김씨는 “조교라고는 하지만 실제 업무는 타이핑, 자료 정리, 온라인 게시판 관리 등 사실상 ‘잡무’에 가깝다”며 “시급 7000원 정도의 아르바이트에 저런 ‘고(高)스펙’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구직경쟁 치열해지자 아르바이트마저 ‘경력·스펙’ 우대
아르바이트 시장에서마저 경력이나 스펙을 따지는 사업주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급 6000~7000원짜리 단순 업무에 경력자를 요구하거나 외국인 손님이 종종 찾아온다는 이유로 외국어 실력을 따지는 식이다. 최악 취업난 속에 구직경쟁이 치열해면서 고용주들 사이에서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식의 발상이 확산한 때문이다.
경력자를 선호하는 이유로는 ‘교육 시간이 절약돼서’란 대답이 63.3%로 가장 많았고 △신입 아르바이트생 보다 일을 잘할 것 같아서(37.2%) △분위기를 잘 알고 있어서(26.1%) 등이 뒤를 이었다.
경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차별을 겪기도 한다. 지난 설 연휴 시내 한 백화점에서 홍삼 판매 아르바이트를 한 취업준비생 변모(24·여)씨는 “판매일을 해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이 일당 10만원을 받을 때 7만원을 받았다”며 “막상 일해보니 판매 경험이 없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속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돌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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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주 등 업체 측은 아르바이트 지원자들이 몰려드는 데 굳이 ‘신입’을 뽑을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경기 화성시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모(37)씨는 “최저 시급도 해마다 오르는 데 업무 요령까지 가르칠 시간적 여유가 없다”며 “따로 정산방법 등 업무요령을 가르치지지 않아도 바로 일을 시킬 수 있는 경험자를 선호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6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15~29세) 실업률은 10.5%로 한 해 전보다 0.2%포인트 상승했다. 지난 1999년 6월(11.3%) 이후 동월 기준으로 18년 만에 최고치다. 같은 기간 알바몬에 등록된 20대 청년의 구직 건수(올해 6월 기준)는 756만 7478건으로 전년 동기(477만 4242건) 대비 59%(279만 3236건) 증가했다.
업종별로는 이벤트·행사 아르바이트 지원자 수가 22만 1720건에서 51만 1408건으로 늘어 최고 증가율(130%)을 기록했고 △안내데스크(82.9%) △일반 음식점(81.4%) △전시·컨벤션·세미나 요원(71.3%) △의류·잡화 매장(64.1%) △사무보조(61.6%) △매장관리·판매(61.2%) 등이 평균을 웃돌았다.
알바몬 관계자는 “아르바이트도 구직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관련 업무 경험이나 자격증 보유 등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가현 알바노조 위원장은 “교육조차 ‘비용’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르바이트 구직자들에게 또 다른 차별”이라며 “아르바이트 시장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