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파트는 지난해 5월 입주한 ‘소셜 믹스(Social Mix)’ 단지다. 분양 아파트 379가구, 임대 아파트 891가구를 한 단지 안에 섞었다. 공용시설인 피트니스센터가 1년 넘게 내버려진 원인은 주민 대립에 있었다. 운동기구 구매 문제를 놓고 “돈을 나눠내자”는 분양 아파트 주민과 “못 내겠다”는 임대 아파트 주민 입장이 엇갈린 것이다.
한 단지 내 상가 상인은 “헬스장 운영뿐 아니라 주차장, 조경, 쓰레기 처리 등 함께 쓰는 시설 관리 문제를 놓고 분양과 임대 입주민이 번번이 부닥치고 있다”라며 “주민 갈등에 치여 관리소장만 벌써 다섯 번이나 바뀌었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이 아파트 임대 거주자인 박모씨는 “이럴 거면 소셜 믹스 아파트를 왜 만든 건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소셜 믹스 정책의 현주소다. 올해로 도입 13년 차를 맞은 이 정책이 겉돌고 있다. 한 단지 안에 분양과 임대주택을 혼합 배치해 저소득층 차별을 없애고 사회적 통합을 꾀한다는 취지는 나무랄 데 없다. 그러나 물리적 거리만 좁혔을 뿐, 막상 살면서 단지 관리·운영 문제로 몸살을 앓는 단지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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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공사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공사가 서울에 공급한 소셜 믹스 아파트는 총 211개 단지 4만 8759가구(임대주택 기준)에 이른다. 2003년 서울 은평뉴타운에서 전국 최초로 소셜 믹스 아파트를 선보인 이후 공급 물량을 꾸준히 확대한 결과다.
애초 이 아파트 승강기 유지비와 단지 청소비는 주택 면적에 비례해 부과해 왔다. 넓은 집에 살수록 돈을 더 내는 구조다. 하지만 분양 아파트 주민으로 구성된 입주자대표회의가 이를 모든 가구가 똑같이 나눠내자고 주장하면서 임대주택 주민 반발을 샀다. 양쪽이 접점을 찾지 못하자 입주자대표회의가 급기야 편의대로 관리 규약을 바꿨다. 분양 아파트는 가구별로, 임대 아파트는 예전처럼 면적별로 관리비를 매기도록 부과 방식을 둘로 쪼갠 것이다. SH공사 관계자는 “분양과 임대를 기껏 한 단지 안에 모아놨더니 관리는 따로 하자며 갈라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단지에 관리 제도 2개…대립 부추겨
특히 분양주택 주민으로 이뤄진 입주자대표회의가 아파트 관리 권한을 사실상 독점해 임대 주민의 소외감도 큰 편이다. 소셜 믹스 아파트 관리 전반의 사항은 입주자대표회의와 SH공사 같은 임대사업자 둘이 정하게 돼 있다. 임대주택 주민은 가구 수가 많아도 관리비나 잡수입 처리 방법 결정, 관리업체 선정 등에 권리 행사를 하기 어렵다. 임차인대표회의가 임대사업자의 협의 대상에 불과해서다.
관리 책임이 있는 지방자치단체 정책도 뒷걸음질쳤다. 서울시는 올해 2월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을 개정해 소셜 믹스 아파트의 ‘공동대표회의’ 관련 조항을 없앴다. 분양과 임대주택 주민이 모여 단지 관리 방법을 협의할 수 있는 유일한 법적 기구의 존립 근거가 사라진 셈이다. 임의사항이긴 하지만 법으로 보장된 ‘혼합단지 공통 관리규약’도 담당 구청이 인정할 수 없다며 반려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분양·임대 주민이 어렵게 공통 규칙을 만들어도 적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관리 제도 정비·임차인 권리 강화해야”
‘임대주택 주민의 월권’(분양 쪽 주장)일까, 아니면 ‘또 다른 차별’(임대 쪽 주장)일까. 전문가들은 공공이 나서서 소셜 믹스 아파트 관리·운영 제도의 회색 지대를 없애야 한다고 지적한다. 무턱대고 집을 짓기만 할 게 아니라 실제 살아가면서 발생할 계층 간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할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관리 규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은난순 한국주거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모든 혼합 단지에 적용할 기본 관리 틀을 공동주택관리법에 규정하고 세부 사항은 지자체 조례에 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며 “갈등중재기구나 공동체 활성화 프로그램 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주택 정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근본적으로는 시설·자산 관리 부분을 제외한 아파트 운영·관리 제도를 기존 소유자 중심에서 임차인 권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