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 이 사장. 2006년부터 7년 가까이 서울 강남에서 사무실을 운영해왔지만 결국 버티지 못하고 지난해 10월 이곳으로 옮겨왔다. “강남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재건축아파트 거래가 심심찮게 이뤄졌어요. 하지만 얼마 못갑디다. 부동산 대책이 나올 때마다 한두달 반짝 거래가 되고는 1년 내내 손가락 빨고 있는 거예요.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려고 빚만 잔뜩 진채 결국 문을 닫았죠.”
그가 부동산 중개시장에 뛰어든 것은 2001년. 잘 나가던 은행원이었던 그는 회사가 1999년 합병되면서 3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찬바람 부는 회사 밖으로 내쳐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듬해 바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땄다. 그는 ‘제2의 인생을 멋지게 살겠노라’ 굳은 다짐을 하며 공인중개사로 사회생활 2막을 열었다.
한 때는 좋은 시절도 있었다. 2000년대 초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곳곳에서 투자 바람이 일었고, 집값은 하루가 멀다하고 뛰어올랐다. 은행원으로 10년 넘게 일해온 그는 사업수단도 나름 좋았다.
사업 욕심에 불법 거래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 때 유행처럼 번졌던 ‘다운계약서’·‘복등기’(이중등기) 작성은 중개업소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소)이 성행하자 그 길로 나서는 중개업자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지금은 엄두도 못낼 일이다. 단속이 강화된데다 수요자들도 예전과 달리 불법까지 자행하면서 투자를 하려고 하지 않아서다.
이 사장은 요즘 다른 일거리를 찾고 있다. “주변에 중개업소 사장들 보면 ‘투잡’을 뛰는 사람들이 많아요. 내년이면 둘째 아들 녀석이 대학생이 될텐데, 한달에 1~2건의 전·월세 거래만으로는 도저히 생계를 이어가기 힘듭니다.”
문을 닫는 중개업소도 속출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지난 한해동안 문을 닫은 중개업소는 1만6523곳에 이른다. 중개업소가 과잉 상태에 이른 것은 제도적 원인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해광 공인중개협회 회장은 “중개업소가 등록제로 돼 있어 무한 배출이 가능하다”며 “이는 서비스 질 저하 및 전문성 절하를 가져오는 만큼 시·군별로 인원을 제한하는 쿼터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큰 문제는 스마트폰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직접 거래가 늘어나는 등 중개업소가 설 땅이 좁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더이상 골목길 중개업소에 가만히 앉아 고객을 기다리는 단순한 중개로는 불황기에 살아남기 힘들다”며 “중개업도 관리업으로 탈바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