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이 사랑한 자작나무, 지역과 산촌 살리는 보물이 되다

■연속 기획-숲, 지역과 산촌을 살린다(9)
강원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 대한민국 100대 명품숲 선정
1990년대 병충해 피해 벌채한 자리에 69만본 자작나무 식재
환상·이국적 은백색 자태 ‘인생샷’ 유명…年30~40만명 방문
강원도·인제군 등 관광자원으로 인식해 명소화 사업 진행중
  • 등록 2024-08-08 오전 5:40:00

    수정 2024-08-08 오전 5:40:00

산과 숲의 의미와 가치가 변화하고 있다. 가치와 의미의 변화는 역사에 기인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황폐화한 산을 다시 푸르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렵고 힘든 50년이라는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산림청으로 일원화된 정부의 국토녹화 정책은 영민하게 집행됐고 불과 반세기 만에 전 세계 유일무이한 국토녹화를 달성했다. 이제 진정한 산림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산림을 자연인 동시에 자원으로 인식해야 한다. 본보는 지난해 산림청이 선정한 대한민국 100대 명품 숲을 탐방, 숲을 플랫폼으로 지역 관광자원, 산림문화자원, 레포츠까지 연계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을 모두 100회에 걸쳐 기획 보도하고 지역주민들의 삶을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2월의 강원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전경. (사진=인제국유림관리소 제공)
[인제=이데일리 박진환 기자]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은 과거 오지 중의 오지로 통했다. 대표적인 문구로는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가 있다. 이 문구에 얽힌 유래는 과거 난리를 피해 피신한 한 임금이 수도의 형편이 궁금해 수차례 사람을 보냈는데 그때마다 되돌아오는 이가 없자 다시 사람을 보내면서 “인제 가면 언제 오겠느냐”고 묻고 만일에 또 돌아오지 않는다면 “원통해서 못 보내겠다”고 했다. 그 뒤로 이 문구는 다른 곳으로 식구를 떠나보낼 때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는 말로 쓰였다가 강원도 등 전방에서 군 생활을 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유명해졌다.

5월의 강원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전경. (사진=인제국유림관리소 제공)
1990년대 솔잎혹파리 피해 지역에 138㏊ 규모 자작나무 숲 조성

강원 인제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면적이 넓으면서 인구는 가장 적은 지역이다. 인제군에는 해발 1000m가 넘는 험준한 산들이 즐비하다. 서쪽으로는 해발 1146m의 도솔산, 1316m의 대암산 등을 사이에 두고 양구군과 맞닿으며 남쪽으로는 1436m의 방대산, 1118m의 소뿔산, 1443m의 주억봉, 1388m의 구룡덕봉, 1240m의 가칠봉 등을 사이에 두고 홍천군과 맞닿는다.

산이 험하고 교통이 불편해 소멸위기를 겪던 강원 인제에서 작은 변화가 숲에서 시작했다. 강원 인제 원대리의 자작나무 숲이 유명세를 떨치면서 강원 인제는 더이상 오지가 아닌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당초 이 일대는 국가 소유의 금강송 군락지였다. 그러나 1990년대 솔잎혹파리 피해가 극심했고, 산림당국은 이 일대의 소나무들을 벌채한 후 138㏊ 규모의 숲에 자작나무를 심었다. 1995년까지 이곳에 69만그루의 자작나무가 심어졌다.

북부지방산림청 인제국유림관리소 김남호 소장은 “1992년경 솔잎혹파리 피해가 심해 이 일대에 대단위 벌채가 이뤄졌다”면서 “당시 양묘장에서 키웠던 자작나무를 경제림에 식재해보자는 논의가 있었고, 이곳에 자작나무와 낙엽송 등을 같이 식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식재 방식도 다양하게 고안했다”며 “자작나무만 따로 심거나, 같이 심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 현재는 아주 건강한 숲으로 만들어졌다”고 덧붙였다.

7월의 강원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전경. (사진=인제국유림관리소 제공)
지난해 12월 폭설 피해로 고사 위기…직원·지역주민들 정성에 대부분 회복

1일 취재진이 방문한 인제 자작나무 숲은 평일임에도 방문객들로 주차장이 거의 꽉 차 있었다. 자작나무 숲 안내소에서 시작되는 숲길을 따라 금강송과 낙엽송 등을 보며 3㎞ 가량을 걸으면 별바라기 숲이 나타났다. 솔잎혹파리의 강한 공격을 이겨낸 우량 금강송이 방문객을 압도하는 사이 수령 30년 이상의 자작나무가 빽빽하게 있는 이 숲은 절경 그 자체가 연출되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뻗은 은백색의 자작나무가 초록 잎들과 어우러져 탄성을 자아냈다. 환상적인 은백색에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피톤치드는 4시간이 넘는 여정의 피로를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8월의 햇살은 무서울 정도로 뜨겁고 힘들었지만 나무들이 내어준 그늘을 따라 새하얀 자작나무 사이를 걷는 체험은 몸과 마음에 힐링을 주고 있었다. 자작나무를 사랑했던 시인 안도현은 ‘이 나무를 도시의 새 식구로 들이고 싶다’며 대놓고 고백했다.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면 일제히 고개를 숙인 자작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지난 겨울 폭설과 함께 새찬 강풍이 몰아쳤고, 눈 무게를 견디지 못한 자작나무들은 바닥에 닿을 정도로 줄기가 늘어졌다.

당시 이 소식을 듣자마자 지역주민들은 숲을 찾아와 나무 위 눈을 털어냈다고 한다. 주민들의 정성이 통했는지 자작나무들은 매일 조금씩 고개를 들더니 지금은 70~80%까지 회복됐다. 현재 경사진 군락지 나무들만 일부 휘어 있었고 대부분의 자작나무들은 허리를 다시 세우며, 우아한 귀족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숲의 정중앙에 위치한 인디언 집과 야외 무대는 사진을 찍는 방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숲속 교실과 생태 연못, 전망대 등에도 ‘인생샷’을 원하는 이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북부지방산림청 인제국유림관리소 송동현 주무관은 “원대리 일대 국유림 3000여㏊ 중 138㏊에 자작나무를 식재했다”며 “지난해 12월 폭설로 피해를 입은 자작나무들의 생사를 놓고 주민들과 함께 노심초사했고 다행히 대부분 다시 살아나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송 주무관은 “이 사건을 계기로 자작나무 숲은 이제 국가의 품을 떠나 국민들의 벗과 같은 존재로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우리나라에서 시범 재배하고 있는 자작나무의 수령을 아직 모른다는 점에서 후계목 육성을 통해 자작나무 숲의 지속가능성을 꾀하고 있다”고 전했다.

9월의 강원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전경. (사진=인제국유림관리소 제공)
지역소멸 위기 인제에 명품숲 탄생…산촌경제 활성화 성공 사례로 꼽혀

인제 자작나무 숲은 국유림이 왜 필요한지, 국유림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또 국유림을 통한 산촌 활성화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성공 사례이기도 하다. 1990년대 자작나무를 식재한 후 2008년 유아숲체험원으로 개방하면서 서서히 유명해졌고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자작나무가 군집해 있다는 입소문이 더해지면서 연간 30만~40만명이 방문하는 명소로 성장했다. 자작나무 숲은 7개 노선에 10.7㎞ 구간의 탐방로가 있다. 곳곳에 길을 잃지 않게 돕는 안내소, 야외무대, 목공체험실이 있고 숲해설가, 숲길등산지도사, 학교숲 코디네이터 등 인적 자원도 운영 중이다.

자작나무 숲의 브랜드를 극대화하는 프로젝트들도 선보이고 있다. 관광자원으로서 자작나무 숲의 가치는 강원도와 인제군 등 지자체들도 실감하고 있다. 강원 인제군은 총사업비 840억원을 들여 ‘인제 자작나무숲 관광자원화 마스터플랜’ 계획을 수립했다. 2029년까지 3단계 사업을 거쳐 숲길 정비, 교통, 체험·편의시설·체류시설 등의 세부계획을 토대로 장기적인 관광객 유입 요소를 파악하고, 이용성 시설 유치 등을 통한 자작나무숲의 관광자원화를 계획하겠다는 구상이다.

12월의 강원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전경. (사진=인제국유림관리소 제공)
年 30만~40만명이 방문하는 관광명소…운영주체·방식 변경 고민할때

이에 앞서 산림청은 지난해 대한민국 100대 명품숲에 선정한 데 이어 올해 걷기 좋은 명품 숲길 30선으로 선정했다.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의 생산유발효과 총액은 지난해 기준 모두 441억원 규모로 지역 내 비중은 24.2%이다. 부가가치유발효과 총액도 278억원이며, 고용유발효과는 332명 수준이다.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138㏊)의 산림공익가치는 56억 6000만원으로 추정된다. 또 지난 10년간 강원 인제군의 인구가 0.2% 감소한 반면 원대리 자작나무 숲이 위치한 인제읍의 인구는 같은 기간 1% 증가했다.

강원 인제의 보물이 된 자작나무 숲이지만 향후 운영 주체와 방식을 놓고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관련 전문가들은 “직원이 수십여명에 불과한 인제국유림관리소가 연간 30만~40만명이 방문하는 자작나무 숲을 지금처럼 직접 관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앞으로 산림복지와 치유, 휴양 등의 관점에서 산림청 산하의 공공기관 또는 지자체가 관리하는 방안을 고민할 때”라고 조언했다.

외국산 수종의 시범재배 및 경제림 육성을 위해 시작한 강원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한번도 안온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오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명품 숲이다. 자작나무 숲을 떠나며, 아쉬움과 함께 앞으로 더 국민에게 사랑받는 숲이 될 것이라는 희망이 갖고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강원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입구에 설치된 국유림 안내표시판. (사진=박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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