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어제 국회 본회의를 열고 지난해보다 2.8%늘어난 657조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을 처리했다. 증가율만 보면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윤석열 정부의 국정목표인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올해도 예산안 법정시한(12월 2일)을 19일 넘기며 지각 처리라는 오명을 씻어내지 못했고 예산안을 볼모로 정치공세를 펼치는 고질적 구태도 변한 게 없었다는 점에서 유감이다.
이번 예산안에서 여야는 정부안에서 4조 2000억원을 감액하는 대신 야당이 밀어붙인 지역 상품권 예산과 새만금 예산을 당초 요구의 절반 수준인 각각 3000억원씩 증액하는 선에서 타협했다. 총선이 있는 해이지만 총지출 증가율을 최소화하고 국채발행을 자제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문재인 정부 시절의 과도한 팽창예산을 정상화했다. 그러나 명분 없는 선심성 예산이 여야 합작으로 주고받기식 흥정대상이 되는 등 막판 예산 조정 과정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국회는 9월 정기국회 전 정부로부터 예산안을 제출 받지만 국정감사와 정치공방으로 11월이 돼야 뒤늦게 심사를 시작한다. 수백조원의 예산안을 법정처리 시한까지 심사하기엔 부족한 면이 있다. 2014년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어 예산안 자동 본회의 부의제도를 도입했지만 2014년과 2020년 두 차례만 빼고 모두 법정 기한을 넘긴 이유다. 그러다 보니 여야 일부 지도부만 참여하는 ‘소(小)소위’에서 밀실담합을 통해 예산안을 확정하는 부실 졸속 심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여야 실세 정치인들이 해당 지역구 사업을 위해 ‘쪽지 예산’을 서로 챙기는 야합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여야가 정치공방에 눈이 멀어 법정 처리 시한을 무시하고 국회 예결위가 아닌, 속기록도 남기지 않는 비공식 협의체에서 나라살림을 좌우하는 건 확실히 비정상적이다. 법정 처리시한의 구속력을 높이고 불가피하게 시한을 넘겼다면 후속 협의과정이라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소소위를 열더라도 무슨 근거로 예산안이 삭감되고 증액됐는지 기록으로 남겨 납세자인 국민이 판단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일이다. 법정시한 무시, 선심성 예산 담합, 일부 실세들의 짬짬미 나눠 먹기라는 파행은 이제 끝낼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