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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전문가들은 국내 대기업의 R&D 지원이 해외 주요국보다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이 첨단 기술개발을 주도하는데 지원이 취약해 글로벌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경련 분석 결과 세액공제와 감면, 보조금 등 정부의 대기업 R&D 지원율은 2019년 기준 2%였다. 프랑스와 독일, 영국, 일본, 미국 등 G5 국가의 평균치는 19%다. 우리나라와 17%포인트 차이다. 이를 두고 추광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경제본부장은 “글로벌경쟁 시대에 세제 혜택이 적은 우리 대기업은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기업 지원 축소는 국가적인 R&D 생산성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나아가 글로벌기업과 맞서는 우리 대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우려다. 기술과 산업 발전은 갈수록 빨라지는데, 외국 기업이 자국의 지원을 바탕으로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낼 동안 우리 대기업은 쫓아가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후발주자들의 추격도 따돌려야 하는 샌드위치 구조에서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려면 대기업의 R&D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까닭이다.
대기업의 R&D 세액공제 확대는 우리 대기업의 R&D 투자를 촉진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주요 방법이다. 전경련이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등 자료를 분석한 결과 대기업 R&D 세액공제율이 당기투자분 기준 1%포인트 오르면 대기업 R&D 투자증가율은 1.03%포인트 높아졌다. 공제율을 이명박 정부 시절인 6%로 확대하면 투자 증가율은 4.1%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집계됐다. 금액으로는 1조9000억원이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기업의 R&D 지원이 증가하면 투자와 고용 확대로 이어지고 경제가 성장하는 선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며 “대기업은 활용할 여유자금도 있어 투자 효과를 촉진하기 용이하다”고 부연했다.
달리 말하면 대기업의 R&D 투자를 국내에 유치하지 못 할 경우 그만큼의 경제성장 효과를 놓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 교수는 “세액 공제가 2%뿐인 우리나라에서 어떤 대기업이 국내에 R&D 투자를 하고 싶어 하겠느냐”며 “우리 대기업이 외국에 R&D 시설을 짓는 등 외국에서 투자를 진행하면 고용, 건설 등 투자 효과가 외국으로 유출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의 R&D 지원뿐 아니라 대기업 지원을 확대해 중견·중소 협력사들의 R&D 투자를 더욱 촉진하고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R&D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미 국내 대기업들은 협력사의 R&D 추진을 지원하고 있다. 삼성전자(005930)는 협력사의 기술개발과 설비투자 자금을 저금리로 대출해주는 상생펀드를 조성했고, 보유한 특허를 미거래 중소기업에도 개방해 지난 9월까지 1900여건을 무상 양도했다.
정명석 아주대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대기업에 R&D 지원을 늘리면서 대기업이 협력사들의 R&D 컨설팅에 나서도록 유도하되, 대기업에 R&D 투자금을 지원해 협력사의 R&D 비용을 받쳐줄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며 “협력사들의 기술력을 개선하면 납품하는 제품의 수준도 올라 완성품의 품질도 더 나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R&D 투자 결과가 사업화로 이어지도록 산업계와 학계, 연구기관 사이에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견해도 제시됐다. 현재는 이렇다할 협력 체계가 마련되지 않아 대학교나 연구기관의 R&D는 결과 보고를 위한 논문이나 실적 쌓기용 특허출원으로만 남고 실제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에 따르면 정부출연연구기관이 보유한 특허는 2020년 기준 4만4922건이지만 기술실시나 양도, 출자 등에 활용된 특허는 1만6410건으로 36.1%에 그쳤다. 절반 이상이 서랍 속의 ‘장롱 특허’로 남아있는 셈이다.
박희재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대기업이 R&D 투자의 마중물 역할을 하고, 대학과 연구기관, 산업계가 협력해 연구 역량이 부족한 기업의 능력을 뒷받침하면서 R&D가 실제 사업으로 이어져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