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책임총리제 개헌없이 가능…차기 대통령 결심해야”[만났습니다①]

문희상 전 국회의장 인터뷰
"현행 헌법에서 대통령 결단만 있으면 가능"
대선 앞두고 정치권에 ‘대관소찰’ 자세 주문
"민족중흥 갈림길…난파선의 선장 싸움 안돼"
  • 등록 2022-01-13 오전 6:00:00

    수정 2022-01-13 오전 6:00:00

[대담=김성곤 정치부장, 정리=이유림 기자] 자타 공인 ‘의회주의자’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11일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막기 위해서는 국무총리 추천권이 국회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야가 총리 후보자를 각각 1명씩 추천하면 대통령이 그 중 1명을 지명하는 정치 개혁이 필요하다는 고언이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서울 여의도 인동초평화포럼 사무실에서 이데일리와 신년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국회의 총리 추천은 여야가 정파적 이해를 떠나 신망이 두터운 후보자를 추천하고, 대통령이 이를 존중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국회의 추천으로 임명된 총리는 실권이 강화돼 궁극적으로 ‘책임 총리제’가 실현될 것으로 문 전 의장은 기대했다. 또 입법부와 행정부 간 협력이 한층 강화되는 효과도 예상된다.

문 전 의장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인동초평화포럼 사무실에서 가진 이데일리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책임 총리제는 헌법 개정 없이 가능하다. 차기 대통령의 결심에 달린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책임 총리제가 실현된다면 총리는 국무위원 임명 제청권 및 해임 건의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고 단언했다. 현행 헌법상 총리는 정부 구성권이 있지만, 대통령 인사권에 대한 개입으로 여겨지며 실제 행사된 적은 거의 없었다.

제20대 국회를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한 문 전 의장은 정치권을 향해 애정 어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3월 치러지는 대선은 여야 후보 모두 국회의원 경험이 없어 사상 초유의 ‘0선’ 대결로 치러진다. 여의도에서 멀어질수록 청와대와 가까워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치에 대한 국민적 혐오가 짙다. 문 전 의장은 “민주주의 요체는 의회주의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아쉽다”고 말했다.

문 전 의장은 여야 대선 후보들에 대해 “정치를 왜 하는지, 국가는 왜 존재하는지 등 근본적 문제에 대해 깊은 생각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관소찰`(大觀小察·크게 보고 작은 부분도 살핀다)의 자세를 당부하면서 “지금은 민족 중흥의 결정적 기로에 서 있다. 난파선의 선장이 되기 위한 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문 전 의장과의 일문일답.

-여의도를 떠나면 오히려 정치가 잘 보인다던데.

△맞는 말이다. ‘대관소찰’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크게 볼 줄 알아야 하지만 세세한 것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뒤죽박죽 내부 싸움을 할 때는 큰 흐름이 잘 안 보인다. 지금은 소찰은 못하는데 대관은 가능하다.

-대선이 온통 진흙탕 네거티브 경쟁인데.

△지난 국회 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정치개혁을 시도했는데, 여야의 당리당략이 우선시되면서 스스로 합의한 안을 깨버렸다. 그 원칙이 살았으면 지금쯤 여당도 여당다워졌을 텐데, 죽기 살기 사생결단하는 승자독식의 정치를 계속하게 된 거다. 적대적 공생관계였던 여야에 공동 책임이 있다.

-여야 대선후보에게 조언과 당부를 한다면.

△소찰만 하는 게 아니라 대관할 수 있는 유일한 자리가 대통령이다. 100미터 높이의 산에서 99미터까지 올라가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정상에 서는 순간 사방을 둘러보고, 산맥만 있는 게 아니라 바다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지금 대선 후보들은 정치를 왜 하는지, 국가는 왜 있는지,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은 어떤 책임이 있는지 등 근본적 문제에 대한 깊은 생각이 없어 보인다. 지금 대한민국은 민족중흥의 결정적 갈림길에 서 있다. 얼마나 급박한 상황인지 알면 저런 소리를 할까 싶다. 서로가 망하길 바라는 싸움을 하는 것은 난파선의 선장이 되려고 싸우는 것과 똑같다.

-이번 대선은 시대정신이 안 보이는데.

△김영삼 전 대통령 당선 때는 군정 종식이 시대정신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당선 때는 수평적 정권교체였다. 3김 시대 이후에는 권위주의, 금권 만능주의, 지역주의 끝내야 한다고 해서 노무현 정부가 탄생했다. 이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다. 몇 가지 핵심 과학기술의 싸움이 될 것이다. 여기서 ‘아차’ 하면 미끄러진다. 여야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시대정신은 엄청난 흐름으로 오고 있다.

-젠더 이슈와 세대갈등이 심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은 늘 존재하고, 그걸 조정하는 게 정치의 역할이다. 특히 성별, 인종은 인간의 원천적인 부분을 갖고 논하는 갈등이다. 이걸 조장해서 정치적 이득을 보려고 하면 안 된다. 정치 지도자급이 되면 정책과 비전을 갖고 크게 붙어야 한다. 색깔론을 꺼내고, 편을 가르고 갈라치기 하는 건 정치 하수나 하는 짓이다.

-저출산 고령화, 국민연금 같은 중요한 어젠다는 실종됐다.

△기후와 인구는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다. 괜히 미리 꺼냈다가 손해날 수 있으니까 전략가들이 참고 있을 거다. 누가 선점하느냐의 문제이지 나오긴 할 거다. 그런 싸움은 자꾸 해도 좋다.

-문재인 정부 임기 말인데 지지율이 높다.

△전무후무한 일이다. 최선을 다한 결과가 시대정신과 맞아 떨어져 지지율로 나오는 거다. 적폐청산과 남북문제의 기본은 살렸다고 평가한다. 현 정부 들어 뭐가 더 좋아졌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더 나빠지는 걸 막은 것도 공이다.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잘한 건 잘했다고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아쉬운 점은 없나.

△문재인 정부는 촛불 정부다. 촛불 혁명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결합에서 나왔다. 그러면 가장 먼저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거나 위임하는 쪽으로 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앙 정부로 권력이 몰리고, 청와대가 좌우하는 세상이 된다. 여야를 막론하고 촛불 혁명의 중요한 역사적 의미에 대해 다 잊으려고 하거나, 잊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대통령 스스로 자신의 권력을 깎아야 하는데, 역대 대통령 모두 당선된 뒤에는 입장이 달라졌다. 권력의 속성이 그렇다.

-차기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책임총리제를 주장했다. 국회가 총리 추천권을 갖는 거다. 현행 헌법에서도 가능하다. 그렇게 된다면 총리는 헌법에 보장된 권한인 국무위원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행사할 수 있을 거다.

-여야 각각 추천하면 대통령은 여당 추천 후보를 지명하지 않겠나.

△그렇게 하다가는 망하게 된다. 그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게 될 거다. 두고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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