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빠른 세상에 필요한 ‘느린 것들’
조금은 느린 사진도 괜찮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정밀하게 찍고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 대신 필름카메라를 든 사람들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누구보다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세대라고 하지만 오히려 최근의 뉴트로(New-tro, 복고의 새로운 해석) 유행은 젊은 층에도 아날로그 감성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신중에 신중을 더해 노출 값을 계산해 사진을 찍는다는 점이 매력입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는 황승환(19) 씨의 말이다. 부담 없이 몇 번이고 다시 찍을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와는 다르게 필름카메라는 한 컷 한 컷이 소진된다.
황씨는 필름카메라가 디지털과는 다른 색감과 느낌이 좋다고 말한다. 또 “현상 스캔을 맡기고 결과물을 기다릴 때 두근거림을 디지털카메라에서는 느낄 수 없다”고 전했다. 황씨는 세 대의 필름카메라 중 '미놀타 X700'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정한결(21) 씨는 아버지가 쓰다가 집에 방치되어 있던 ‘캐논 ae-1 program’을 사용한다. 그는 “시험 삼아 한 번 찍어봤는데 꽤 괜찮게 나왔다”며 필름카메라를 쓰는 이유를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느린 무언가를 잡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정씨는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면서 ‘제한되는 것들’에 매력을 느낀다. 그는 “필름은 한 롤 당 컷 수가 36컷가량으로 한정되기 때문에 한 장씩 찍을 때마다 신중하게 된다”고 답했다. 또 “한 롤을 다 찍어야만 사진관에 맡길 수 있어 필름을 다 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유행은 지나도 감성은 남는다
필름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로 대세가 바뀐 지는 오래다. 특히 '필카 세대'가 아닌 젊은 층이 필름카메라를 찾는 현상이 눈에 띈다.
김난도 교수의 책 <트렌드 코리아 2019>에서는 2019년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로 '와비사비'(WABI-SABI)를 꼽고 있다. 와비사비는 '부족함에서 만족을 느끼는, 겉치레보다 본질에 집중하는, 서두르기보다 유유자적 느긋한' 삶의 방식을 뜻한다.
김 교수는 "뉴트로 감성을 찾는 젊은 세대는 (중략) 손때 묻고 보잘것없는, 그러나 내게 정신적인 충족감을 주는 걸 찾는다"고 분석하고 있다. 2030세대가 필름카메라를 지금 다시 손에 쥐는 까닭은 '너무 바쁜 사회에 선을 긋고 자신의 감성을 지키기 위한 일'인지도 모른다.
/스냅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