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화폐개혁]④해외 성공사례 살펴보니‥'익명·무기한 교환' 성패

구권·신권 교환 기간 충분히 주고
구권 출처 묻지 않으면 혼란 최소화
“韓 경제상황 감안시 유럽모델 따라야”
  • 등록 2019-04-08 오전 5:45:00

    수정 2019-04-08 오전 5:45:00

(사진=AFP)


[이데일리 김정현 기자] 우리나라에서 화폐단위 변경(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이 현실화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전문가들은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유럽 모델을 참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유럽식 리디노미네이션은 구권과 신권 교환을 △익명으로 △10년 이상 장기간 가능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구권→신권 ‘익명으로 10년이상 장기간 교환’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2년 1월 1일 유로화가 화폐로 통용되기 시작한 뒤 유럽연합(EU)의 개별 회원국들은 국별로 10년 이상 혹은 무기한 기존 화폐와 유로화 간의 교환이 가능하도록 했다. EU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도입단계부터 점진적으로 화폐변경을 진행했다.

1999년 1월 1일 출범한 유로화는 3년간은 주식·채권시장, 은행, 상품가격표시 등에서 ‘장부상 통화’로만 존재했다가 2002년 1월 1일부터 실제 화폐로 통용됐다. 유럽 각국의 국민들이 유로화를 새 통화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적응 기간을 둔 것이다.

기존 통화와 유로화의 교환 기간도 넉넉히 설정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핀란드, 그리스 등은 각각 유로화 도입 뒤 10년간(2002년 1월 1일~2012년 2·3월) 구권을 신권으로 교환해줬다. 포르투갈은 20년, 네덜란드는 30년이다. 독일과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은 아예 따로 기한을 두지 않고 언제든 교환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 같은 노력에 의해 유로화 화폐 변경에 따른 부작용은 미미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2012년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로화 도입 10주년을 맞아 “유로화가 성공적으로 정착됐다”며 “환전비용이 절감됐고 물가상승률도 낮았다”고 평가했다.

5교환기간 제한·출처 따져 과세한 인도 경제 타격

반면 이런 노력이 없었던 경우 혼란이 심했다. 2016년 화폐 개혁을 실시한 인도 사례가 대표적이다. 화폐의 가치를 재설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은 아니지만, 인도의 화폐 개혁은 구권과 신권의 교환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다.

인도 정부는 2016년 11월 8일 밤 기자회견을 통해 기존에 사용중이던 500루피와 1000루피 지폐 유통을 당일 자정 금지했다. 대신 구권을 대체할 500루피와 2000루피 신권을 이틀 뒤인 10일부터 통용했다.

인도 당국이 지정한 구권과 신권 교환 기간은 상당히 짧았다. 최소 10년에서 무기한 교환이 가능하도록 한 유럽 국가와 달리, 인도 당국은 교환 가능 기간을 불과 50여일(2016년 11월 8일~12월 30일)로 제한했다.

이 기간 안에 구권을 은행계좌에 예치하거나 신권으로 교환하지 않으면 휴지조각이 된다. 아울러 25만루피(원화기준 410만원) 이상 구권이 입금된 은행계좌는 출처가 불분명할 경우, 30% 세금과 200% 벌금을 부과했다.

급진적으로 화폐개혁으로 인해 인도 경제는 충격을 받았다. 현금부족 사태가 전국적으로 확산했다. 치약·칫솔 등 소비재와 자동차 같은 내구재, 부동산 거래도 급격하게 위축됐다는 평가다. 2016년 화폐개혁으로 2017년 인도 경제성장률이 0.4~3.3%포인트 정도 하락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유럽이 했던 것처럼 구권과 신권의 교환을 장기간, 익명으로 가능하도록 한다면 한국의 리디노미네이션에 다른 혼란도 없을 것”이라며 “효율성, 비용절감 등 효과를 위해 리디노미네이션을 하는 것인만큼 유럽 모델을 참고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고 말했다.

자료=ECB,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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