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한국문학 돌풍 김언수 "소설 속 하류인생 궁금하다면, 놀러 오시라"

단편소설집 '잽' 프랑스서 출간
현지 매체 호평 이어져
"우리나라도 유능한 에이전시 많아지길"
차기작 '빅아이' 내년 선보일 예정
  • 등록 2018-11-20 오전 12:17:41

    수정 2018-11-20 오전 12:17:41

작가 김언수(사진=ⓒ백다흠)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나는 언제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단 한 가지밖에 없다. ‘나는 이래 산다. 궁금하시면 놀러 오시라. 아니면 다른 곳에도 재미있는 삶이 많으니 그리로 가보시던가.’”

작가 김언수가 프랑스에 한국문학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프랑스에서 출간한 단편소설집 ‘잽(Jab!)’이 ‘설계자들’에 이어 또 한번 현지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표제작인 ‘잽’을 비롯해 ‘꽃을 말리는 건, 우리가 하찮아졌기 때문이다’ 등 총 6편의 단편을 통해 다양한 인간상을 재치있게 그려냈다. 출간 이후 프랑스의 주요 일간지와 문학 매체들은 ‘현대사회의 해학이 담긴 소설집’이라 말하며 ‘짧은 분량의 이야기들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가 특유의 유머와 탁월한 재능을 발견할 수 있다’고 호평했다.

김 작가는 등단 이후 시대와 폭력, 운명에 천착해왔다. 2002년 진주신문 가을문예 공모와 이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한 뒤, 첫 장편소설 ‘캐비닛’으로 제12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했다. 이후 조직적으로 벌어지는 암살을 다룬 장편소설 ‘설계자들’, 부산 조직폭력배의 이야기를 그린 ‘뜨거운 피’ 등을 내놨다.

올초 ‘설계자들’은 미국 굴지의 출판사 더블데이와 한국문학 최초로 ‘억대’의 판권 계약을 체결하며 기분좋은 소식을 알렸다. 현재 미국 외에도 영국과 핀란드 등 20개국에 판권이 팔렸고, 2016년에는 프랑스추리문학대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김 작가는 “세계 출판시장은 에이전시에 의해 많이 움직인다”며 “우리나라도 공격적이고 유능한 에이전시들이 많이 나와서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 판로가 넓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프랑스 현지에서 반응이 좋다

△프랑스는 다른 나라에 비해 외국 문학에 관대하다. 내가 낸 책들은 대부분 프랑스에서 먼저 출판되고 이후 다른 나라로 퍼져 나갔다.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의 출판 관계자들이 프랑스판으로 ‘설계자들’을 처음 접하고 관심을 가졌다고 하더라. 어떤 의미에서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프랑스가 교두보 역할을 하는 셈이다. 탑클래스 번역가가 없다면 공자가 소설을 써도 말짱 도루묵이다. 한국문학을 세계에 팔고 싶다면 훌륭한 번역가들을 키워내고 지원해야 한다. 세계의 출판 시장은 에이전시들에 의해 움직인다. 공격적이고 유능한 에이전시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알다시피 소설가들은 이미 차고 넘친다.

-한국스릴러의 강점은

△나는 내 소설이 스릴러 계열에 속한다는 걸 이번에 영국 가디언지를 보고 처음 알았다. 하하. 한국에는 스릴러나 판타지, SF 등에 대한 전통이 별로 없다. 아마도 한국 문단이라는 곳이 답답하고 고루한 스타일을 오랫동안 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로버트 맥기는 유럽 영화에 대해 ‘지루함에 대한 열광’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와 비슷하다. 정유정과 서미애 작가가 이번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매우 주목을 받았는데 그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혼자 길을 개척해왔다.

-‘설계자들’에 대한 해외 반응이 뜨겁다

△내년 1월에 미국과 영국에서 설계자들이 출간된다. 프랑스가 다양한 소규모 출판사에 의해 움직이는 ‘작은 마켓’이라면 미국과 영국 같은 영어권은 ‘빅 마켓’이다. 현지에서의 반응이 어떨지는 내년에 책이 나오고 상황을 봐야한다. 헐리우드 영화사들과 영화 판권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만, 기대보다 못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인생의 대부분이 그렇기 때문이다.

-차기작이 내년에 나온다고 들었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6월까지 태평양에서 참치잡이 원양어선을 탔다. 한국 초기 원양어선 어부들에 관한 소설 ‘빅아이’를 쓰기 위해서였다. ‘빅아이’는 말 그대로 큰 눈이라는 뜻인데 큰 눈을 가진 참치 이름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직후의 폐허 속에서 원양어선 선원들은 경험도 기술도 없이 낡은 고물 배를 탔다. 좁고 위태로운 원양어선은 내가 인생을 살아가며 만나본 가장 격렬하고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초저녁부터 아침까지 참치를 끌어올리는 고된 하루일과를 끝내고 샤워를 하며 빛나게 웃는 선원들을 보고 뱃전에서 울었다. ‘가족들이 행복해서 자기가 행복한 삶!’ 나는 그날 일기장에 ‘헌신’이라는 말을 쓰고 오래전 잃어버린 가치에 대해 생각하고 부끄러워했다. 어쨌거나 간만에 만난 목숨 걸어보고 싶은 소설이다.

단편소설집 ‘잽’ 프랑스어판 표지(사진=한국문학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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