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것은 그때 북한 대표단이 보여준 반응이다. “하필이면 이런 곳에 저녁 자리를 마련했느냐”라며 장소 문제를 따지고 나선 것이다. “호텔 이름이 6·25동란 때 우리 조선 사람을 살육한 미제국주의자 워커 장군의 이름을 땄다는데 우리를 여기로 안내한 것은 다른 속셈이 있는 게 아니냐”는 항의였다. 치열했던 체제 경쟁으로 인해 어떤 핑계로든 꼬투리를 잡아야 하는 처지였다.
이에 대한 우리 측 이범석 대표의 대꾸가 돋보인다. “남한 대표단이 보름 전 평양에 갔을 때 ‘스탈린 거리’에 갔었다. 스탈린은 사람을 얼마나 죽였는가”라는 몇 마디 반격으로 북측의 기세를 일거에 꺾어 버렸다. 어느 북한 대표가 “지방에 있는 자동차들을 서울로 옮겨오느라 애 먹었겠다”고 비아냥대자 “그렇다. 저 많은 건물들을 옮겨오느라 더 힘들었다”는 즉흥 응수로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만든 주인공이 바로 이범석이었다. 그가 뒤에 통일원장관을 거쳐 외무장관을 지내던 도중 북한이 꾸민 아웅산테러 사건의 희생자가 됐다는 사실 자체가 상징성을 지닌다.
그러나 워커힐호텔을 북측 인사들의 숙소로 내준 데 대해 보수진영 일각에서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도 사실이다. 워커 장군을 추모하는 호텔에 적군 수뇌부를 맞아들인 게 가당치 않다는 논란이다. 이미 46년 전 여기서 저녁식사를 했던 남북적십자회담 북측 대표단의 불만과 똑같은 이유이면서도 입장은 정반대로 나타난 셈이다.
남북기본합의서 및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이 타결된 1991년 12월의 제5차 남북고위급 회담이 워커힐호텔에서 열렸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당시 연형묵 정무원 총리를 포함한 북측 대표단이 여기 묵으면서 회담에 임했던 것이다. 그 비핵화 약속이 북한의 일방 파기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된 현실에 비애감이 클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에 배치됐던 전술핵이 이 공동선언을 계기로 철수했으나 북한은 오히려 미국 본토까지 위협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렇게 본다면 북측 인사들을 워커힐호텔에 묵도록 했다거나 막대한 투숙비를 지급했다는 것은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외부와 차단막을 친 채 저자세로 일관한 정부 처사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천안함 폭침사건의 주모자 의혹이 쏠리는 김영철에 대해서도 유족들의 목메인 원성을 한 마디도 전달하지 못했다. 송영무 국방장관이 “김영철의 방한은 군 입장에서는 불쾌한 사안”이라고 입장을 밝힌 정도다. 지난날 북측 대표들의 면전에 훈계를 서슴지 않던 이범석 대표의 재치와 기개가 새삼 아쉬워진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