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독립 70주년 달군 영화 '밀정·귀향'

독립운동국제영화제 첫 미얀마 상영회
한국과 미얀마, 항일 역사·영화 공감대
  • 등록 2018-01-20 오전 6:00:00

    수정 2018-01-20 오전 6:00:00

[신승현 미얀마 MYANKORE 편집장] 독립운동국제영화제 미얀마 상영회가 지난 3~5일 미얀마 양곤 영화협회영화관에서 열렸다. 올해는 미얀마가 영국의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다. 항일영상역사재단(이사장 이원혁)이 주최한 이번 행사는 매년 광복절을 전후해 열리는 ‘독립운동국제영화제’의 첫 해외 상영회다. 이번 행사에 참석한 미얀마 언론인이 이데일리에 기고문을 보내왔다.

영화 밀정, 귀향.
놀라웠다. 150여 좌석을 가득 메운 내부에 좌석 바깥의 열기가 더 뜨거웠다. 미얀마의 대부분 미디어가 모두 출동한 듯했다. 한국과 미얀마를 대표해 이원혁 항일영상역사재단 이사장과 찌 소 툰(U Kyi Soe Tun) 미얀마영화협회장이 개회식 선언을 할 땐 객석에서도 온갖 카메라들이 불을 밝혔다.

그리고 한순간 침묵했다. 양곤시 마웅 마웅 소(Maung Maung Soe) 시장이 축사를 하기 전에 개회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일어서서 애국선열들에 대해 1분 동안 묵념을 올렸다. 이날 행사는 ‘독립운동국제영화제 미얀마 상영회’로서 지난 2016년부터 광복절을 전후해 ‘영화로 보는 역사 바로 알기’라는 목표로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열리는 독립운동국제영화제의 첫 해외 상영회였다.

관심은 개회식 행사가 끝난 후 더 달아올랐다. 개막식 영화가 시작되기 전 1시간 동안 각 미디어에서 취재 전쟁이 벌어졌다. 약 30개 이상의 미디어에서 이 행사를 취재하러 왔다. 왜 이 행사를 개최하게 됐는지, 왜 미얀마에서 하게 됐는지, 미얀마에 와서 독립운동 영화제를 하는 나라가 왜 한국인지 등 그들은 궁금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열기는 한국 영화를 보고 증폭됐다. 상하이에서 경성까지 의열단의 활약을 그린 <밀정, The Age of Shadows>과 일제에 강제 동원된 일본군 위안부의 실제 삶을 극화한 <귀향>은 미얀마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을 더욱더 자극했다. 대회 이틀째 상영된 <밀정>을 본 아웅 쪼 민(30)씨는 “미얀마에서 한국 드라마가 엄청난 인기다. 그런데 한국이 일본 식민지였던 드라마를 본 적이 없어 한국의 근대 역사를 잘 몰랐는데 이번에 한국도 미얀마처럼 일본 식민지 시절을 겪은 것을 알게 됐다”며 “영화가 새로운 사실을 일깨워줬다”고 말했다.

미얀마는 올해가 독립 70주년이고 한국은 내년이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이 된다. 양국은 식민지 지배와 아웅산 장군과 김구 선생이라는 독립의 아버지를 둔 점, 식민지 청산을 제대로 못 해 결국 1961년과 1962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점, 이후 민주화 과정이라는 거의 동일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독립운동의 미얀마 상영회는 남다른 의미를 가졌다는 평가다.

독립운동국제영화제 미얀마 상영회가 지난 3~5일 미얀마 양곤 영화협회영화관에서 열렸다.[사진=신승현, 항일영상역사재단]
한국 영화에 대한 공감은 더 확산됐다. 한국 영화<귀향>이 몰고 온 파장이 컸던 덕분이다. 귀향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는데 이곳 미얀마 또한 조선의 꽃다운 소녀들이 위안부로 끌려온 곳이기 때문이다. 1942년 부산을 출발해 일본을 거쳐 2800여명의 조선 소녀들을 태운 배가 도착한 곳이 당시 버마의 랑군(현재 양곤)이었다. 그들은 영국제국주의를 미얀마에서 쫓아내려는 일본 군대를 따라 북진했고 그 흔적들이 삔우린과 미찌나 등에 남아있다.

버마 로드(Burma Road)로 불리는 버마 전선과 임팔 전투 등에서 일제가 대패하면서, 일제에 강제 동원된 그들은 퇴각하는데 방해가 된다며 몰살당하거나 가망 없이 버려졌다. 미얀마에서의 조선 소녀들은 타향에서 죽음을 맞아 돌아오지 못하는 넋을 위로한다는 의미의 귀향(鬼鄕) 그 자체였다.

<귀향>을 본 미얀마 사람들은 공분했다. 그들의 오욕의 역사와 겹쳤기 때문이다. 한국어 통역사로 일하는 테 떼 조(28) 씨는 “일제 침략 시기에 미얀마 농민들의 처절한 삶과 저항정신을 보여준 미얀마 영화 <나바>에도 일제에 겁탈당하는 미얀마 여성이 나온다. 당시 마을에 목욕탕 등을 만들어 길거리에서 강간을 일삼는 등 잔악한 행위를 일제가 저질렀다고 한다”며 “그 수치와 고통을 어떻게 말로 할 수 있겠나”고 밝혔다.

그는 “영화 속 그녀는 집으로 돌아갔지만 여기에 왔다는 조선의 여성들은 돌아갈 집도 없었다. 그 어린 소녀들이 얼마나 엄마의 품이 그리웠을까. 일제 시대 때 한국의 여성들이 여기에 위안부로 왔다는 이야기를 작년에 알았다”며 “그들이 양국 간 역사에서 아마 가장 먼저 인연을 맺은 한국 사람들일 텐데 불행하고 슬픈 이야기라 참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더이상 여성이 전쟁과 분쟁의 희생이 돼선 안 된다”며 “미얀마에서 생존해 지냈을 수도 있을 이름 모를 조선의 여인들을 향해 애도를 표한다. 양곤의 코리아센터에 세워진 추모비가 왜 거기에 세워졌는지 더 정확하게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미얀마의 조선 위안부들은 작년에 넋이 조금이나마 위로됐다. 지난해 9월 6일 일제에 강제 동원돼 미얀마에서 희생된 우리 선조들의 한을 달래는 위령제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과 유가족 29명 그리고 미얀마 동포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양곤 코리아 센터에서 희생자를 애도하며 추모비가 건립돼 우리는 약 70여년 후 처음으로 그들의 영혼과 넋을 위로한 것이다.

영화 <귀향>이 상영되기 전에 추모비가 건립돼 우리는 전쟁의 희생양으로 노예의 삶을 살다가 조국과 가족을 그리워하며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의 넋을 조금이나마 위무한 셈이다.

독립운동국제영화제 미얀마 상영회 포스터.[사진=신승현, 항일영상역사재단]
학술대회도 병행해 영화제의 의미를 더했다. 이원혁 이사장은 한용운 스님과 비견되는 미얀마의 우 옥다마 스님(Sayadaw U Oattama)을 발굴해 그의 독립운동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발표해 행사의 품격을 높였다. 만해와 옥다마는 출생연도가 같고, 젊은이들에 대한 교육을 중요시했으며, 불교를 바탕으로 식민지배에 끝까지 저항하는 등 사상과 행적이 유사한 닮은꼴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만해 스님은 생전 미얀마에 가보고 싶어했고 옥다마 스님은 1910년경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면서 “서로의 독립운동사를 알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그 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인물과 우리의 독립운동가를 비교·연구하는 것이다. 재단은 ‘독립정신의 세계화’를 목표로 영화제와 비교 학술제를 병행하며 금년에 중국, 베트남 등에서도 상영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성공적인 이번 기획은 미얀마에 아주 시의적절했다. 특히 로힝야 문제 때문에 대외적으로 가장 곤경에 처한 상황에서 미얀마는 조국의 애국심을 고조시켰다는 의미에서 각별했다는 후문이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 미디어의 일방적인 로힝야족 인종청소 언급에 정당성과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미얀마 입장에서 내부적으로 독립운동이라는 주제를 통해 미얀마 사람들을 새롭게 깨우치게 하는 돌파구가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년엔 미얀마 정부에서 상영관 등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독립운동 그림 그리기나 아이들을 위한 독립운동 공연 등도 긍정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민간이 기획하고 특히 미얀마가 아닌 한국에서 주도해 성공적으로 이끈 문화운동에 미얀마 정부와 민간단체가 더 열정적으로 화답하는 모양새다.

미얀마는 작년 12월 샨주와 까친주 그리고 올 1월 라카인주에서 총성이 들리며 70년째 세계에서 가장 오래 내전이 지속되는 국가이다. 한국도 아직 정전협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휴전국가이다. 독립 후 대한민국은 일제를 청산하지 못했고 결국 남북 분단이 되었다. 미얀마는 영국제국주의가 분할 통치와 이이제이로 남긴 라카인 무슬림(로힝야족) 등 소수민족 문제를 정리하지 못했다.

두 국가의 화두는 통일 혹은 연방과 평화이다. 역설적으로 다시 되돌아보는 독립운동의 의미가 두 국가 모두 남다른 까닭이다. 내년 1월 4일 미얀마 독립기념일에 개최될 제2회 독립운동영화제 미얀마 상영회도 그래서 더 특별할 전망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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