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붕괴 '後' 20년, 일본]도시재생 성공모델 '롯본기힐스'를 가다

토지주 설득에만 무려 10년
원주민 재정착률 높여
54층 이상 초고층·빌딩숲
임대수익만 연 2조 규모
세계적 관광명소로 재탄생
  • 등록 2015-11-26 오전 6:00:00

    수정 2015-11-26 오전 10:02:55

△일본 롯본기힐스 모리타워 52층에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쿄 전경. 도쿄타워와 바다를 매립해 조성한 도시 오다이바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정수영 기자]
[도쿄=이데일리 정수영 기자]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버스로 30분 달렸을까. 짙게 깔린 어둠 속으로 휘황찬란한 불빛을 휘감은 거대한 빌딩 숲 사이로 일행을 태운 차량이 들어간다. 전 세계 도시재생의 선도적 건축물인 ‘롯본기힐스’다.

지난주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건설업체 민간협력기구인 이포카(IFAWPAC) 취재차 도쿄를 찾았다. 도쿄 미나토구 중심가인 롯본기에 있는 롯본기힐스는 낡고 생기 잃은 구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 도시재생사업 성공 사례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03년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 일환으로 건설한 주상복합단지로, 부지만 8만 4780㎡에 지하 6층~지상 54층 8개 빌딩으로 이뤄졌다. 이 자체가 하나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대한 규모에 최첨단 기술을 도입해 완공 당시 일본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화제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선도적 도시재생사업 모델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롯본기힐스의 랜드마크는 고층 빌딩인 모리타워다. 지상 54층의 초고층 건물로, 저층에는 쇼핑몰이, 고층에는 모리아트센터가 있다. 52층에는 롯본기의 대표적 전망대인 도쿄 시티뷰가 있어 도쿄 시내는 물론 바다를 매립해 만든 도시 오다이바의 레인보우시티까지 볼 수 있다. 날씨가 맑으면 후지산까지 보인다고 안내원이 설명했다.

롯본기힐스는 호텔·영화관·쇼핑몰·주거공간이 한 곳에 다 모여 있어 하루 평균 3000명 이상 찾는 도쿄의 대표적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거둬들이는 임대 수익만 연 200억엔(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롯본기힐스의 랜드마크인 모리빌딩 앞에 마련된 휴게공간에서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롯본기힐스]
하지만 넓은 건물 기둥, 좁은 주차장은 지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동행한 조병천 태양기획 이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도시재생사업 사례로 꼽히고 있지만, 지금은 일본에서도 이곳 외에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업지가 많아, 기대하고 왔다 실망하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롯본기힐스가 들어서면서 도쿄 미나토구 롯본기 일대는 빈민촌에서 고급스러운 신흥 부촌으로 발돋움했다. 그렇지만 개발이 완료되기까지 오랜 시간과 자금이 필요했다. 1986년 도쿄도가 도시 재개발 방침을 세우고 롯본기 6초메지구를 재개발유도지구로 지정하면서 시작된 이 도시재생사업은 2003년 준공까지 무려 1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국유지를 민간에 일괄 매각해 도시계획 결정부터 완공까지 6년만에 완성한 바로 인근 미드타운의 3배에 이르는 기간이다.

민간 업체인 모리빌딩사가 400명이 넘는 토지주를 설득하는 데만 무려 10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총 4조원에 달하는 사업비 조달을 위해 참여한 재무적 투자자도 10여개 사에 달했다.

롯본기힐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개방성이다. 야마모또 카즈히꼬 모리빌딩 전무는 “도시로서의 ‘붐빔’을 갖게 하는 것이 하나의 큰 과제였다”고 설명했다. 거주자뿐 아니라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과 주변 지역 주민에게도 공간을 개방하자는 게 설계 초기부터 지향한 방침이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다. 롯본기힐스는 분양이 아닌 100% 임대로 공급하는데, 임대료가 너무 비싸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한 달 임대료로 월 60만엔에서 450만엔, 우리나라 돈으로 월 627만원에서 4700만원까지 책정돼 있다. 주변 상업시설 임대료도 덩달아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모리타워 51층에 있는 회원제 롯본기클럽은 입회비만 800만원, 종신회원은 2600만원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모리빌딩이 ‘부자들의 낙원’ 건설을 목표로 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도쿄대 공학부의 나이토 히로시 교수는 “롯본기힐스와 같은 대규모 재개발로 인해 도시의 중·저층부가 공동화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원주민 재정착을 생각하지 않고 밀어내기식 개발을 해온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밴치마킹 사례로 적당하다는 평가다. 특히 모리빌딩사는 두 개의 임대주택 맨션을 지어 원주민을 우선 입주할 수 있도록 하면서 재정착을 유도했다. 서정렬 영산대 교수(부동산·금융학과)는 “서울 용산 도심재개발 당시 원주민들과 갈등을 빚었던 용산사태를 생각하면, 개발 속도가 늦더라도 갈등 요인을 조정하는 일본식 방식은 배울 점이 많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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