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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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지난 21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내 연습실. “우리가 꽤 모였으니 필경 옹녀가 나타날 거여.” “참말로 고것을 보믄 우덜이 활활 타오를 란가?” 노랫소리와 함께 옹녀가 등장하자 장승들이 하나둘 홀린 듯 산만해졌다. 그들을 향해 옷자락을 거칠게 벗어보이는 옹녀. “그거 안돼!”라며 연출이 만류하자 한바탕 웃음이 터져나왔다. 6월 11일부터 7월 6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되는 국립창극단의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연습 장면. 고전 비틀기의 달인으로 알려진 스타 연출가 고선웅의 첫 창극 도전작이다. 판소리극 ‘변강쇠전’을 옹녀에 초점을 맞춰 각색했다. 각 도의 민요와 가곡, 왈츠 등 다채로운 소리를 배치했고 가요 ‘하숙생’도 나온다.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도 흥겨운 무대가 펼쳐졌다. 어떤 장치도 없는 단출한 무대에 7명의 배우는 10가지 배역을 소화해냈다. 전체를 이끄는 소리꾼은 안숙선 명창. 고수의 북장단을 중심으로 1인 4역을 맡았다. 음향기기는 없다. 오직 배우들의 목소리만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특징. “판을 벌이고 한번 놀아보는디.” “얼쑤~.” 흥겨운 가락에 객석에선 자연스레 추임새도 나온다.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사흘간 공연된 창극 ‘토끼타령’의 한 장면. 1회 130명만 관람이 가능했던 총 3회의 공연은 전 회차가 매진됐다.
| 국립국악원 ‘토끼타령’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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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를 무대화시킨 ‘창극’에 활기가 돌고 있다. 바람을 주도하는 이는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과 안숙선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국악계를 이끄는 두 단체의 행보는 ‘극과 극’이다. 국립창극단이 내세운 ‘현대성’ 변화에 국립국악원은 ‘정통성’ 고수를 선언하고 나섰다.
△김성녀_파격과 실험 겸비한 ‘신창극’
2년 전 김 감독이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국립창극단은 ‘파격’의 옷을 입었다. ‘창극은 고루하다’는 편견을 이겨내기 위해 김 감독이 먼저 시도한 건 연극계 스타 연출가의 기용이었다. 시작은 2012년 11월 초연한 ‘장화홍련’. 한태숙 연출과 작업한 이 작품은 창극 역사상 유례없는 전석 매진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스릴러 창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객석을 무대로 끌어올린 과감한 설정과 함께 공포극을 창극의 소리와 연극적 대사로 풀어내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이어 이병훈 연출의 ‘배비장전’(2012), 윤호진 연출의 ‘서편제’(2013)도 매진을 기록했다. 서재형 연출의 ‘메디아’(2013)는 전통 소재가 아닌 서양 고전을 창극의 소재로 가져온 케이스다. 김 감독은 “더 많은 관객과 호흡하기 위해서는 창극의 변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사진=이데일리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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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숙선_원형 부활시킨 ‘정통창극’
안 감독은 100년 전 초기 창극의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 ‘작은 창극’을 만들었다. 창극이 점점 대형화하고 서구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적 본 모습을 찾아보자는 취지다. ‘토끼타령’은 작은 창극의 일환으로 마련된 공연. 오는 10월에는 앙코르 무대를 올릴 예정이다. 안 감독은 한 소리꾼이 여러 배역을 맡는 ‘분창’(分唱)을 통해 초기 창극의 모습을 재현해냈다. 소재도 판소리 다섯 바탕(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에서 따왔다. 판소리의 본디 공연 모습인 고수의 북 장단을 중심에 놓고, 소리를 반주하는 선율악기의 음악은 장면 전환에만 드러나도록 최소화했다. 의상 역시 간소화했다. 창극 배우들은 한복에 부채 하나만 들고 노래로 극적 장면을 그려낸다.
안 감독의 무대가 ‘음악’에 방점을 뒀다면 김 감독의 공연은 ‘연기’에 초점을 맞춘다. 송현민 음악평론가는 “연극배우 출신의 김 감독과 정통 창극에서 잔뼈가 굵은 안 감독의 노선이 다른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며 “국립기관의 양대 감독이 서로 다른 창극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고 말했다.
| 안숙선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사진=이데일리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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