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허리'인데‥한숨만 느는 중견기업

  • 등록 2013-09-04 오전 7:00:00

    수정 2013-09-04 오전 7:00:00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산업용 기계류 부품을 제조하는 A사의 B사장. 그는 1980년대 중반 창업한 이래 약 30년간 회사만 바라보고 달려왔다. 어느덧 회사는 연매출 6000억원 규모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그는 요즘 고민이 많다. 60대 중반을 넘긴 이후 가업승계를 고려하기 시작하면서다.

B사장을 고민하게 하는 것은 엄격한 가업승계 세제혜택 요건이다. 최고세율 50%의 증여세를 다 내자니 너무 부담스럽고, 매출 2000억원 이하여야 하는 세제혜택 요건은 애초 해당이 안된다. 그는 “기업규모로 가업승계를 규제하는 사례는 외국에서는 거의 없는 걸로 안다”고 하소연했다.

의료기기를 제조하는 중견기업 C사도 사업에 난항을 겪긴 마찬가지다. 지난 7월부터 적용된 계열사간 일감몰아주기 과세대상에 걸린 탓이다. C사는 의료기기 도매 및 중개업을 하는 D사의 자회사로 의료기기 국산화를 위해 설립됐다. C사 관계자는 “일본으로부터 기술이전 등을 받아 국산화에 성공해 자랑스러워 했다”면서도 “국산화를 통해 국가경제에 기여했는데도 되려 세금만 더 늘었다”고 난감해했다.

“가업승계 요건완화 등 법제도 개선 시급”

산업계의 ‘허리’로 불리는 중견기업의 한숨이 늘어가고 있다. A사와 C사의 사례는 우리나라 중견기업의 경영현실과 현행법간 괴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먼저 A사. 상속세는 피상속인의 사망을 기점으로 피상속인에게 과세하는 조세이며, 증여세는 타인으로부터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재산을 무상 취득하는 경우 과세하는 조세다. 현행법상 우리나라의 상속세 및 증여세의 최고세율은 50%. 쉽게 말해 창업자가 자녀에게 1000억원을 물려주면 500억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얘기다.

과세혜택이 없진 않다. 가업승계 공제·증여세 과세특례 등 지나치게 무거운 상속세와 증여세를 경감해주는 제도가 있긴 하다. 문제는 자격요건이 엄격하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가업승계 세제혜택은 연매출 2000억원 이하의 중소·중견기업부터 받을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연매출 2000억원 이하 중견기업은 전체의 65% 수준. A사 같은 나머지 35%의 중견기업은 가업승계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셈이다.

국내 한 중견기업 사장은 지난달 29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오찬에서도 “상속공제대상을 연매출 1조원 미만까지 확대해달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조병선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최근 국회에서 열린 중견기업 토론회에서 “상속세와 증여세를 감면한다고 해도 감소하는 조세수입은 3~4년이 경과하면 법인세·근로소득세·부가가치세 등을 통해 상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규모 외에 피상속인 요건·상속인 요건·사후관리 요건 등 우리나라의 가업승계 세제혜택 요건은 유난히 무겁다는 평가가 많다. 한국조세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중견기업 강국으로 알려진 독일의 경우 가업승계시 기업규모와 피상속인요건은 아예 없다. 그외 조건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가볍다.

C사는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진 경우다. 재벌의 편법증여 차단을 목적으로 일감몰아주기 과세가 도입됐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과세대상의 99%가 중소·중견기업이었던 탓이다. 중견기업연합회가 120개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이들은 안정적 공급확보(45.4%), 기술유출 방지(25.5%) 등을 이유로 계열사간 거래는 불가피하다고 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일감몰아주기 과세 적용대상을 일정규모 이상의 대기업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고, 수정안을 준비중이다.

R&D 세제지원도 중견기업 숙원

연구개발(R&D) 투자지원도 중견기업계의 숙원이다.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르면 현재 중견기업의 R&D투자 세액공제 적용대상은 연매출 3000억원 미만이다. 전체 중견기업 중 74% 정도만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이다. 나머지 26%는 대기업과 똑같은 환경에서 경쟁해야 한다.

중견기업의 현행 세액공제 비율도 높지 않다. 현행 8% 수준으로 4년차 미만 중소기업(25%)와 비교해 차이가 크다. 중견기업계는 박 대통령과의 최근 오찬에서도 R&D 세제지원을 가장 먼저 건의했을 정도다. 중견기업연합회 한 관계자는 “R&D투자 세액공제 적용대상을 매출 1조원 안팎으로 완화하고, 세액공제 비율도 중소기업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견기업계는 이외에 ▲금융 부담 ▲우수인력확보 애로 ▲하도급거래 애로 등 경영환경 전반을 대상으로 법·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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