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축제 같은 주총을 꿈꾸다

  • 등록 2013-02-28 오전 7:25:00

    수정 2013-02-28 오전 7:25:00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매년 5월 미국 네브래스카주의 작은 도시 오마하에서는 축제가 열린다.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 전 세계에서 3만명이 넘는 주주들이 몰려와 온 도시가 북적댄다.

주주들은 주총장에서 버핏에게 직접 질문을 던지고, 버핏은 자신의 인사이트를 담아 성의껏 답한다. 이러한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주주들은 주총 한참 전부터 항공편과 호텔을 예약하고 주총일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다. 버크셔가 다른 기업과 달리 주주총회일을 휴일인 토요일로 잡는 것도 더 많은 주주와 즐기기 위해서다. 버크셔의 주총이 ‘자본주의의 우드스톡’이라 불리는 이유다.

국내 상장사들의 주총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다. 2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본격 시작됐다. 올해에도 변하지 않은 것이 두 가지 있다. 바로 넥센타이어가 14년째 주총 1호 기업으로 막을 열었다는 것과 절반 가까운 상장사가 특정 금요일에 주총을 열어 ‘슈퍼 주총데이’가 생겼다는 것.

올해에는 3월22일이 바로 주총데이다. 현재까지 주총일을 정한 12월 결산법인 703개사 가운데 43.19%인 111개사가 이날 주총을 연다.

이렇게 상장사가 주총데이에 몰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소액주주의 관심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다. 주총은 주주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한해 경영성과를 평가받는 한편 주주들에게 경영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 그리고 올해 경영계획 등을 설명하는 자리지만 소액주주들이 많이 참석할수록 주총 의사진행이 늦어지고 종종 의도적으로 주총을 방해하는 ‘주총꾼’의 타겟이 될 수 있어 피하는 것이다.

특히 올해에는 주총 분위기가 좋을 리 없다. 글로벌 경기불황으로 부진한 성적표를 낸 상장사들이 많기 때문이다. 실적이 좋지 않으니 당연히 주주에 대한 배당도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슈가 있는 기업들은 특히 주총이 걱정이다. 경영권 분쟁으로 초미의 관심사인 팀스 역시 주총일을 22일로 잡았다. 장소도 충청북도 음성군이다.

소액주주들로서는 주총이 회사의 한해 경영방침이나 경영진의 생각을 들어볼 소중한 기회다. 기관투자자들에게도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상장사들이 한날 비슷한 시간에 주총을 개최하는 것은 주주들의 이같은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때문에 전자투표제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지만, 이에 응하는 기업은 드물다. 우리나라에서도 소액주주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축제처럼 즐길 수 있는 주총 풍경이 그려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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