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내린 24일 서울 구로동 고려대병원에서 김덕균씨(55)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김씨의 부인 박정숙씨(53)는 “장례를 다 치르고 나면 공시지가가 왜 그렇게나 많이 내려갔는지 법에 호소하고 싶다”며 울먹였다.
서울 신길3동의 한 상가건물 3층에 살던 김씨는 지난 21일 저녁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방에는 TV가 켜진 채였고 김씨 옆에는 빈 소주병들이 뒹굴고 있었다. 유족들은 “직접 공들여 지은 집이 철거 위기에 놓이고 보상금도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되자 낙심하고 술을 마시다 깨어나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김씨는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면서 열성적으로 뉴타운 반대 운동을 해왔다.
고인은 집에 대한 애착이 유독 강했다. 겨울이면 요강이 얼 정도로 추운 단칸방에 살며 어렵게 모은 돈과 대출금을 합해 지금의 신길3동 집터에 헌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지은 것이 1996년. 건축업자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지은 집이었다. 도로가 좁아 공사차량이 들어오지 못해 짐수레로 벽돌과 시멘트 등을 직접 날라가며 건물을 올렸다.
김씨 가족에게 불행이 찾아든 것은 2009년 신길동 뉴타운 개발이 시작되면서부터다. 은철씨는 “아버지는 ‘힘들게 지은 건물을 평생 안고 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철거를 원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재개발 시작과 함께 김씨는 뉴타운 반대 운동에 매달렸다. 김씨의 한 지인은 “김씨가 회의 때마다 참석하고 앞장서서 뉴타운이 잘못됐다고 알렸다. 지난 4월 관리처분총회 때도 차에 확성기를 달고 다니며 ‘어떻게 장만한 내 집, 내 땅인데 누가 뺏어가느냐’고 외쳤다”고 말했다. 그는 “김씨는 뉴타운 반대 주민들 사이에 결속이 약해 집회를 제대로 열지 못하고 공시가격이 주변 지역 시가의 절반도 안되는 데 크게 낙심했다”고 덧붙였다. 주민들은 “김씨가 너무나 억울하다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하소연했다”고 전했다.
신길동 뉴타운 지구는 찬성과 반대 주민이 나누어져 갈등을 빚고 있다. 끈끈하던 친목모임 회원들이 등을 돌렸다. 고인의 아들 은철씨는 “아버지가 집을 지키기 위해 잃으신 게 많다. 가만히 놔뒀으면 잘살 수 있는데 누구를 위해 뉴타운 개발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신길 뉴타운 사업이 확정된 지 2년이 지났지만 공사가 시작된 곳은 아직 없다. 지금 신길3동에는 ‘뉴타운에 반대한다’는 플래카드만 휘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