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을 앞둔 지난 2일 전북 고창 선운사 만세루에서 차담을 나누고 있는 주지 법만 스님(왼쪽)과 천주교 광주대교구장인 김희중 대주교. / 연합뉴스 |
일부 종교의 배타성과 종교 간 갈등이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불교와 천주교 사이 상생과 화합의 교류가 돋보인다. 지난 부활절(4월24일)과 부처님오신날(5월10일)을 맞이해 양측이 서로를 축하방문하며 교류하는 모습은 종교 간 화합의 모범을 보여줬다. 서울 조계사는 부활절을 맞아 김수환 추기경 추모 다큐멘터리 <바보야>를 경내에서 상영했고, 이에 대한 감사와 답례의 의미로 천주교는 서울 명동성당에서 법정 스님 추모 다큐멘터리 <법정 스님의 의자>를 상영했다.
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종교간대화위원장이자 광주대교구장인 김희중 대주교는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지난 2일 전북 고창 선운사를 방문해 주지 법만 스님과 환담했다. 법만 스님은 “오래전부터 불교와 천주교는 소통이 잘돼왔다”며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종교인들이 자주 만나면서 국민들이 편안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대전에서는 천주교 대전교구와 천태종 사찰 광수사가, 충북 옥천에서는 태고종 사찰 대성사와 천주교 옥천성당이 교류하며 서로의 축일을 축하하고 기념강연을 나누었다.
1997년 12월 길상사 개원법회를 찾은 김수환 추기경(오른쪽)과 인사를 나누는 법정 스님./ 경향신문 자료사진 |
김수환 추기경은 1997년 12월 길상사 개원 법회에 참석해 축사했고, 법정 스님은 98년 2월 명동성당에서 천주교 신자들을 앞에 두고 무소유의 정신으로 외환위기를 이겨내자고 호소했다.
천주교의 수녀, 불교의 비구니, 원불교의 여성교무 등 천주교와 불교의 여성 성직자로 이루어진 모임 ‘삼소회’도 있다. 88년에 생긴 이 모임은 함께 봉사활동을 하고 문화행사 등을 개최하면서 종교 간 갈등의 벽을 허물고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는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한국 불교와 천주교가 유독 상호 교류와 화합의 장을 마련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각 종교 관계자들은 역사적 배경을 먼저 그 이유로 든다. 전통 종교인 불교가 외래 종교인 천주교를 박해한 역사가 없고, 오히려 박해받는 천주교인들을 절과 암자 등에서 숨겨줬던 인연이 있었다는 것이다. 경기 광주 외딴곳에 있는 천진암에서 1779년 정약전, 정약용, 권상학 등 조선 유학자들이 비밀리에 모여 공동신앙생활을 하고 천주교회를 창립하면서, 천진암이 한국천주교 성지가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충남 공주 마곡사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마곡사의 김태균 종무실장은 “천주교가 전래된 서산과 가까이 있는 이곳 주변에 천주교 교우촌과 수녀회 등이 만들어졌는데 천주교 박해를 피해 온 교인들을 스님들이 마곡사의 큰 굴뚝 속에 숨겨주었다고 한다”면서 “이런 인연으로 지금도 마곡사를 찾아오는 수녀님, 신부님들이 있다”고 말했다.
타종교에 대해 열린 생각을 갖고 있는 교리도 불교와 천주교가 비슷하다. 천주교주교회의 이영식 미디어팀장은 “천주교는 62~65년 제2차 바티칸공회에서 다른 종교에 대한 포용성을 강조하고 개방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이후 자연스럽게 종교 간 유대관계를 강화시켜왔다”며 “천주교와 불교는 기본적으로 상대 종교를 인정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서로 잘 맞는다”고 말했다.
또한 수행법이 비슷하기 때문에 종교인 개인적으로 만나도 소통이 잘된다고 한다.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이자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운영위원인 혜경 스님은 “스님들은 ‘동양중’, 신부들은 ‘서양중’이라는 얘기가 있다”고 말한다. “가정이 있는 목사들과 달리 스님과 신부님은 독신이라는 동질감도 있고, 묵상을 하는 수행법도 같다”면서 “수행하면서 생기는 일들에 대한 공감대가 잘 형성된다”고 전했다.
천주교주교회의 이영식 팀장은 “우리나라에서 불교와 가톨릭이 허물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외국 성직자들이 깜짝 놀란다”며 “세계분쟁의 절반 이상이 종교갈등으로 인해 일어나는데 개신교 쪽의 일부 근본주의를 예외로 두면, 우리나라는 예외적으로 종교 간 화합이 잘되는 나라에 속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