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택(67) 규제혁신추진단 전문위원은 최근 서울 종로구 규제혁신추진단(추진단) 사무실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퇴직공무원 출신인 정 전문위원은 법정 인증규제 개선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PM)를 맡아 13명의 퇴직공무원(전문위원) 및 4명의 연구원을 이끌며 총 257개 인증규제 중 115개는 폐지·제외하는 등 189개를 정비했다. 인증규제를 갖고 있던 25개의 부·처·청을 설득해 얻어낸 성과로, 이로 인한 기업부담 경감효과는 약 1527억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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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이해 얽힌 인증제…후배 공무원과 싸우며 규제개선
법정인증이란 제품 등과 같은 평가대상이 표준이나 기술규정 등에 적합한 지를 검증하기 위한 것이다. 해외 주요국은 법정인증을 안전 분야를 중심으로 의료·보건 분야만 한정적으로 운영하고 있기에 미국 93개, 일본은 14개 등으로 우리나라에 비해 매우 적다.
우리나라의 법정인증이 일본 대비 18배에 달할 정도로 남발된 것은 국가표준기본법에 인증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없다는 문제점 외에도 소관부처의 이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법정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인증 및 시험기관을 거쳐야 하는데, 인증·시험기관 상당수는 소관부처 퇴직자 등이 주요보직을 맡는 등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부가 2015년에도 법정인증 개선을 시도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 부처는 끝내 인증제도 개선을 거부해 한덕수 국무총리가 직접 나서기도 했다. 한 총리는 추진단 설립 아이디어를 낸 것 외에도 매월 격주로 추진단에 회의에 참석해 전문위원 등과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한다고 한다. 정 전문위원은 “마지막까지 해결되지 않은 일부 인증규제는 총리님이 직접 추진단이 만든 문서를 국무회의에 들고가 해당부처 장관에게 전달하기도 했다”며 “총리뿐만 아니라 이정원 차관 등도 나서서 부처를 설득했다”고 설명했다.
정 전문위원은 앞으로 인증제는 관(官) 중심에서도 벗어나 기업 스스로가 자기적합성(DoC)을 선언하는 형태로 운영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기업 스스로 자사 제품이 인증기준에 적합한지를 검증·선언하고 이를 지키지 못했을 시 큰 사후책임을 지는 형태로 가야 한다는 제언이다. 정 전문위원은 “미국의 UL 인증이나 일본의 JIS 인증은 모두 민간인증”이라며 “관 주도에서 벗어나야 적기에 제품을 출시하는 등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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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국무조정실 산하에 설립된 추진단은 고령화 사회에서 의미있는 실험이기도 하다. 140명의 인원 중 절반이 넘는 90명이 4급 이상으로 공직을 마친 퇴직공무원(전문위원)이다. 당초 ‘올드보이(한덕수 국무총리)가 올드보이(퇴직공무원)를 모은다’는 시선도 있었으나 추진단은 이미 33개의 덩어리 규제(다부처가 얽힌 규제)를 개선하는 등 성과가 뚜렷하다. 정 전문위원 역시 2011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과학벨트기획단 단장(국장급)을 마지막으로 퇴직 후 관련 연구원에 있다가 2022년 추진단에 합류했다.
변제호 추진단 지원국장은 “현장에서는 규제를 개선해달라고 하지만 상당수는 부처와 협의과정에서 복잡한 지침이나 규정을 논의하다가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다”며 “퇴직공무원들은 실제 복잡한 지침이나 규정 등을 담당해보신 분이기 때문에, 부처가 어설프게 둘러대도 소용이 없다”고 웃었다. 실제 퇴직공무원들을 만만하게 봤던 일부 부처는 추진단으로부터 개선요구를 받은 후 대응이 마땅치 않자 추진단에서 전화가 오면 의도적으로 피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정 전문위원은 “추진단에서 열심히 한다고 해서 승진을 하는 것도 인센티브를 받는 것도 아니다”라면서도 “관료생활에서 얻은 노하우를 토대로 규제·제도를 개선해 사회를 바꿔간다는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2022년 5월 첫 전문위원 모집 당시는 지원 인원이 부족해 미달됐으나, 지난해(2023년) 모집 때는 15명 모집에 60명이 몰려 4대의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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