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 브래들리(Faith Bradley)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 교수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어느 나라의 자본시장이든 작은 구멍을 찾아내 돈을 빼돌리려는 일당이 있다”며 “제도의 사각지대를 잘 보완하는 게 주가조작 등 증권범죄의 재발을 막는 해법”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 D.C.에서 만난 자본시장 정책 전문가들은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제보자 파격 포상금, 투자자 보호 등 주가조작을 방지할 3가지 포인트를 제시했다.
주가조작 엄벌-제보자 1명에 3700억 포상
우선 솜방망이 처벌을 없애 엄단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방안이다. 헤스터 피어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위원(Hester Pierce SEC commissioner)은 이데일리와 만나 “상황, 사이즈에 따라 다르지만 한 번 위법했을 때 비즈니스에서 퇴출되는 경우도 있다”며 “의도적인 위법의 경우에는 좀 더 강하게 처벌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에서 다단계 금융 사기극을 벌인 버나드 메이도프는 2009년에 징역 150년형을 선고받았다.
우리나라는 최대 양형 기준이 징역 15년에 불과하다. 주가조작단이 수백억원 부당 이득을 챙겨도 수사당국이 부당이득 산정에 실패하면 최대 5억원 벌금만 내면 된다. 앞서 금융위원회·법무부·대검찰청·금융감독원은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 시 10년간 자본시장 거래를 제한하고 상장사 임원 선임에서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관련 법안은 지난 5월 발의된 뒤 현재까지 국회에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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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재 미국에서 파격적 포상금에 대한 우려는 사그라든 상황이다. 갈수록 자본시장 범죄가 교묘해지고 있어 내부제보 등이 없이는 정부가 비리를 효과적으로 적발하기 힘든 현실적 상황 때문이다.
2023년 SEC 연례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SEC는 2011년부터 현재까지 397명의 제보자들에게 19억달러(2조5080억원) 이상의 포상금(1인당 평균 63억원)을 지급했다. 지난 5월 한 제보자에게는 역대 최대 규모인 2억7900만달러(약 3700억원)의 포상금이 지급됐다. 제보는 제도 도입 직전인 2010년 334건에서 올해 1만8354건으로 55배 늘었다. 피어스 위원은 “초기에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지금은 좋은 정보가 많이 입수되는 등 굉장히 성공적인 제도가 됐다”고 강조했다.
SEC “국고 환수 제한적…대부분 피해자에 돌아가”
이렇게 제보가 늘고 제재금이 늘면 주가조작으로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에게도 긍정적이다. 페어펀드(Fair Fund) 제도라는 미국의 투자자 보호 방안 때문이다. 페어펀드는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에 과징금 등을 부과한 뒤 걷어들인 제재금을 피해를 본 투자자들에게 반환해주는 구제목적 펀드다.
반면 우리나라는 다른 상황이다. 내달 19일부터 자본시장법 개정안 시행에 따라 과징금이 강화된다. 불공정거래로 얻은 부당이득의 최대 2배까지 환수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같이 과징금만 강화하면 오히려 투자 피해자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내달부터 시행되는 개정안에는 투자자 피해배상 방안은 포함돼 있지 않고, 강화된 과징금은 전액 국고로 환수되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주요국의 불공정거래 조사체계 및 제재수단 연구’ 연구용역에서 “고액의 금전적 제재는 피해자들의 손해를 배상해 줄 위법행위자의 자산을 줄이는 것이 돼 오히려 피해자의 이익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며 “(피해 투자자 배상·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페어 펀드 제도 도입의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브래들리 교수는 “SEC는 정책의 독립성·공정성 때문에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다”며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선 미국의 자본시장 정책을 검토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