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세상에 정이 있다는 걸 아는 일이 어떻게 사람을 강하게 만들까.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이 드라마에서 선자 아버지가 그걸 행동으로 보여준다. 하숙하는 아저씨들이 거친 뱃일 끝에 돌아와 ‘뱃노래’ 한 자락에 술기운을 빌어 더러운 세상을 한탄할 때, 그 소리를 듣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던 양진과 달리 함께 밥숟가락 떴던 그들을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믿어주는 모습이 그렇다. 물론 돈돈 하는 세상이고, 입 바른 소리 한 마디 해도 잡혀가고, 그걸 듣고 가만있었다는 이유로도 끌려가는 세상이었다. 그래서 총칼을 앞세워 아저씨의 소재를 추궁하는 일제 앞에서 두려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사람 간의 정이 있어 선자 아버지는 끝내 모르는 일이라 발뺌한다. 아마도 일제강점기를 보낸 대부분의 조선인들이 그렇게 버텨냈을 게다. 두렵긴 해도 그 두려움을 이기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를 지켜내는 것으로.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파친코>는 1920년대 일제강점기와 1980년대를 오가며 그 격동기를 살아낸 선자(김민하, 윤여정)와 그가 이어나간 4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유독 눈에 띠는 건 1920년대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여러 한국인들의 초상이다. 물론 이민진 작가 역시 당대를 직접 겪은 세대는 아니기 때문에 그 한국인의 초상이 실제 모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런 모습은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독특한 위치에 서 있는 작가의 시선이 투영된 한국인의 초상일 게다. 이 작가는 미국에서 살아오면서, 또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실제 재일동포나 재미동포를 취재하면서 부모세대로부터 물려받은 한국인에 대한 인상을 작품에 녹여냈을 테니 말이다.
선자의 엄마 양진 역시 박복한 삶 속에서도 자신과 가족의 생존만큼 타인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이었다.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술로 세월을 보낸 아버지 때문에 동생을 챙기며 거지처럼 빌어먹고 자랐던 양진은 언청이(구순열)라 장가 못간 하숙집 아들이었던 선자 아버지와 혼인해 살아간다. 그런데 양진은 장애와 전혀 상관없이 남편을 사랑했다. 그래서 아이를 셋이나 잃은 끝에 끝내 선자를 얻었다. 양진은 그래서 마치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가난한 삶이지만 손이 커 하숙하는 아저씨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게 저녁상을 내주는 정이 있는 사람이었고, 의원도 손 쓸 수 없다던 이삭(노상현)을 간병해 끝내 살려낸 인물이기도 했다.
<파친코>에서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선자 아버지는 선자에게 ‘부모 될 자격’에 대한 이야기를 유언처럼 남긴다. “옛날에는 내 팔자가 왜 이리 모진가 할 때가 있었다. 오만천지 다 행복해도 내랑은 평생 먼 얘긴지 싶었데이 그런데 니 엄마가 내게 오고 니도 생겼지. 그라고 보니께 팔자랑 상관이 없는 기라. 내가 니 부모될 자격을 얻어야 되는 거더라. 선자야. 아버지가 강해져갖고 세상 더러분 것들 싹 다 쫓아버렸으니까 아인나 니도 금세 강해질 거다. 나중에는 니 얼라들도 생기겠지. 그 때 되면 니도 그럴 자격이 되야 된다. 선자 니는 할 수 있다. 나는 니를 믿는다.” 선자 아버지가 말하는 ‘부모 될 자격’은 아마도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숙제처럼 남겨진 질문일 게다. 나라가 힘이 있어야 백성도 있다는 뜻으로도 읽히는 그 말이,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쳐 개발시대를 넘어 격동기를 살아오며 희석됐던 한국인의 초상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든다. 가진 건 없어도 정이 있고 인간의 도리를 알아 당당했던 그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