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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 입찰 마감 시간인 11시 10분 전, 복도에 서성이는 사람은 서너명에 불과했다. 경매장에 최종적으로 모인 사람은 50명이 채 안됐고, 좌석 3분의 1 이상이 텅 비었다. 경매에 참여하는 응찰자가 확 줄어들면서 첫 물건으로 올라온 강남구 압구정동 ‘한양아파트’ 전용면적 49.98㎡짜리는 감정가 16억4000만원에 나왔지만 결국 유찰됐다.
이날 기자와 동행한 지지옥션 장근석 팀장은 “중앙법원은 경매 물건이 많아 많을 때는 사람들이 200명까지 몰리는데, 요즘은 50명 채우기도 쉽지 않다”고 전했다. 경매에 처음 부쳐진 신건은 1회 유찰이라는 징크스까지 생길 정도라고 그는 덧붙였다.
첫 경매에 나온 신건 ‘최소 1회 유찰’
지난해까지만 해도 서울 강남권 인기 아파트 경매는 수십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팔려 나갔지만 올 들어 첫 경매부터 주인을 찾지 못하는 ‘신건 1회 유찰’ 징크스가 생겼다. 감정가 100%를 웃돌며 낙찰되던 작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심정화 지지옥션 중앙법정 담당요원은 “법원 경매 데이터 수집 업무를 10년 정도 했지만 경매 참여자들이 눈에 띄게 줄어든건 올해가 처음”이라며 “응찰자들이 줄어들면서 강남권 인기 아파트 신규 경매도 최소 1번은 유찰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경매에 부쳐졌지만 주인을 찾지 못해 유찰된 건수는 올 들어 크게 늘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 매매값이 고점을 찍었던 9월에만 해도 경매 유찰은 12건에 불과했지만 올 들어 1월 52건, 2월 46건 등으로 크게 늘었다. 유찰 건수가 늘었다는 건 기본적으로 응찰자수가 줄어들었고, 섣불리 경매에도 나서지 않는 ‘관망세’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실제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경매 응찰자수는 작년 9월 평균 12.3명에서 올 1월 4.39명, 2월 6.43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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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첫 경매에서 유찰된 압구정동 ‘한양 아파트’를 비롯해 앞서 낙찰된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퍼스티지’ 아파트(전용면적 84.93㎡) 역시 신건 1회 유찰 징크스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 아파트는 지난 1월 16일 감정가 23억원에 나왔지만 한차례 유찰돼 이날 종전 감정가의 80% 수준인 18억 4000만원에 2회차 경매를 진행했다. 그 결과 최초 감정가보다 900만원을 더 써낸 응찰자에게 낙찰됐다. 최근 경매시장 ‘급냉’ 분위기치곤 꽤 선방한 것이란 평가다.
장근석 팀장은 “지금 경매에 나온 물건들은 통상 6개월 전에 감정평가를 받고 나온 물건”이라며 “작년 8~10월 아파트 시세가 정점을 찍은 이후 거래가 뚝 끊겨 시세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만큼 이번 경매 낙찰가는 이 단지의 가치를 따져보는 가늠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매시장에서 응찰자 수가 줄면서 낙찰률(경매진행 건수 대비 낙찰 건수)도 연일 바닥을 찍고 있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경매는 총 85건이 진행됐지만 낙찰된 물건은 37건에 그쳐 낙찰률 43.50%를 기록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낙찰률은 평균 50%대 후반에서 70%대까지 기록했지만 그해 12월 40%대로 꺽인 이후 줄곧 바닥이다. 아파트보다 인기가 덜한 다세대·연립주택 등을 포함한 서울 전체 주거 시설 낙찰률은 37.30%로 더 떨어진다.
4월 공동주택 공시가 발표에 경매시장 위축 ‘장기화’
경매시장의 찬바람은 정부의 부동산 대출규제 영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통상 경매는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사는 유주택자 비중이 높은 데, 지난해 9월 이후 유주택자 신규 대출이 사실상 차단되면서 경매 투자자들의 돈줄이 막혔다는 것이다. 여기에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와 공시가격 현실화 등의 세 부담도 경매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이다.
당분간 경매 시장도 일반 거래시장 못지않은 눈치보기 장세가 심화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본부장은 “응찰자수와 낙찰률이 낮다는 것은 집값 전망이 부정적임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오는 4월 공동주택 공시가격 발표도 있는 만큼 가격 추가 하락 등의 불안감으로 당분간 경매 유찰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