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낸드플래시 업체들의 공장 증설로 내년에는 공급 초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D램익스체인지)
무역 1조 달러와 3%대 경제성장률 회복이라는 ‘축포’도 잠시. 당장 올해부터 반도체 사이클이 꺾일 수 있다는 주요 기관들의 연이은 경고는 우리 경제의 불안감을 다시 키우고 있다.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특성상 반도체 불황은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대한민국의 성장엔진 역할을 하고 있지만, 수요·공급의 균형이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는 장치산업의 취약성을 안고 있어 ‘시한폭탄’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실제로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는 D램 값 폭락이 ‘도화선’이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반도체를 보완할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서둘러 발굴해야 하는 이유다.
韓 경제, 나홀로 견인하는 반도체
우리 경제의 반도체 쏠림 현상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17년 한국 경제는 반도체 홀로 견인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액은 979억4000만달러로, 1994년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960억달러)을 웃돌았다. 2012년만 해도 전체 수출의 9%에 불과했던 반도체 비중은 지난해 17%까지 치솟았다. 수출 증가에 대한 품목별 기여도를 봐도 반도체가 42.9%로 압도적이다.
한국거래소가 코스피 525개 상장사의 1~3분기 누적 실적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우리 기업들의 올해 영업이익은 작년보다 26조1000억원이나 늘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을 빼면 늘어난 영업이익은 1000억원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 ‘고군분투’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반도체 쏠림이 우리 경제에 독(毒)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1993~95년 전대미문의 호황 뒤 찾아온 1996년의 D램값 폭락은 역대 최대 경상수지 적자로 이어져 1997년 외환위기를 불렀다. 2002~04년 호황기를 끝내고 다시 2006년부터 찾아온 D램 불황은 다음해 미국발 금융위기와 맞물려 우리나라 외환, 주식 시장을 송두리째 흔들기도 했다. 사이클이 꺾인 반도체는 한국 경제에 가공할 만한 ‘충격파’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반도체 의존도를 낮춰줄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으로 떠오르고 있는 유망 신산업 분야에서 각종 규제에 묶인 우리 기업들이 맥을 못추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스위스의 금융그룹인 UBS가 국가별 4차 산업혁명 적응력 순위를 조사한 결과(2016년)를 보면 한국은 139개국 중 25위로 바닥이었다.
4차 산업혁명서 도태..새 엔진이 없다
대표적인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전기차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4%대에 머물렀다. 미국은 지난해 26억2800만 달러 어치의 전기차를 수출해 우리나라보다 7배가량 많았고, 독일도 12억9200달러로 4배 수준이었다.
반도체의 경우에는 시스템메모리 분야의 경쟁력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무역협회는 시스템반도체의 현시비교우위지수(RCA)를 집계한 결과, 우리나라의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이 2011년 1.79에서 2016년엔 1.50으로 낮아졌다고 분석했다. 김건우 무역연구원 연구원은 “4차 산업혁명 시대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메모리 반도체에 치중된 수출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은 “글로벌 시장을 내다보면 눈앞이 깜깜한데, 기업들이 (규제에서) 느끼는 무력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며 “4차산업 영역으로 가면 중국이 우리보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대부분의 제조업 분야에서 중국의 추격으로 우리와 기술 격차가 거의 나지 않아 가격 경쟁력에만 집착하는 상황”이라면서 “정부는 제조업 중심의 성장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신산업 위주로 과감하게 규제를 풀고 지원책을 펼치는 등 산업 생태계를 전면 재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