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얼굴 보는 게 소원"…22만 중도 시각장애인의 꿈

사고·질병으로 시력 잃은 중도 시각장애인 22만명
시력 잃고 다시 읽는 법 걷는 법 배워 안마사 도전
장애 딛고 안마원 개업해 살아갈 희망 찾아
  • 등록 2017-10-09 오전 9:00:00

    수정 2017-10-09 오전 9:00:00

서울 맹학교 정문 모습 (사진=이재 기자)
[이데일리 이재 기자] 이따끔 시야가 좁아졌다. 처음엔 그냥 눈이 침침 한가보다 했다. 2003년 이상하게 여겨 병원을 찾았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러나 눈 상태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결국 일상생활이 힘들어질 무렵 찾아간 다른 병원에서 이혜경(52·여)씨는 녹내장 말기 판정을 받았다. 2005년의 일이다. 시신경은 이미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그렇게 이씨는 시력을 잃었다.

“현관앞 일곱 계단이 무서웠다”

시각장애인 10명 중 7명은 성인이 된 뒤 시력을 잃는다. 전체 시각장애인 중 70.9%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씨처럼 질병이나 사고로 성인이 된 뒤 시력을 잃는 ‘중도 시각장애인’은 2014년 기준 21만 9179명이다. 항상 보이던 것들이 더이상 보이지 않으면 두려움이 가장 먼저 찾아온다. 이씨는 “시력을 잃은 뒤 집 앞의 일곱 계단을 내려가기가 무서워 집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전직 버스기사인 장견중(52·남)씨는 폭발사고로 눈을 잃었다. 광역버스를 운전하던 중 차량에 이상을 느껴 멈추고 정비를 하다 사고를 당했다. 정비중 엔진이 폭발했다. 장씨는 오른쪽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왼쪽 눈은 돌출돼 빠졌다. 장씨는 응급실에서 한 달동안 혼수상태로 지냈다.

시력을 잃은 것을 안 것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고도 한참 뒤다. 눈을 다쳐 붕대를 감고 있다고 생각했던 장씨는 병실 복도에서 흐느껴 우는 소리에 잠을 깼다. 장씨의 어머니였다. 장씨는 어머니와 아내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시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2004년 4월의 일이다.

상실감이 컸다. 이씨는 “두 아들이 엄마가 창피해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지 않더라”고 고백했다. 가장이었던 장씨는 “속된 말로 처와 자식들이 ‘도망갈까봐’ 두려웠다”고 말했다. 무력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장견중(왼쪽)씨와 이혜경씨는 사고와 질병으로 시력을 잃었다. 두려운 감정을 잃고 시각장애인으로 사는 법을 익혀 지금은 안마원을 운영하는 ‘원장님’이 됐다. (사진=이재 기자)


“걷는 법, 읽는 법을 다시 배웠다”

시력의 상실은 사회와의 결별로 이어진다. 두 사람은 직장을 잃었다. 이씨는 보험설계사 일을 접어야 했다. 장씨는 15년 경력의 베테랑 운전사였지만 다시는 운전대를 잡을 수 없었다.

희망을 찾기보다 절망을 잊기 위해 재활에 매달렸다. 두 사람 모두 인근 장애인 복지관에서 4달간 기초재활 훈련을 받았다. 학생 때 배웠던 한글을 다시 점자로 분해해 읽고 썼다. 걷는 법도 다시 배웠다. 시각장애인용 컴퓨터를 쓰는 법도 배웠다. 그렇게 다시 세상에 나갈 준비를 했다.

국립맹학교에서 안마를 가르쳐준다는 것은 복지관에서 듣고 알았다.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감에 두 사람은 맹학교를 찾았다. 장씨가 2006년 3월에 입학했고, 이씨는 2007년 3월에 맹학교를 찾아왔다.

이씨는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시력을 잃은 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못하는 게 싫었다. 가족의 도움이 없으면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복지관을 찾았었고, 좀 더 능동적으로 살고 싶어서 맹학교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공부에 매진했다. 처음 안마를 배울 때 어려웠다고 한다. 뼈가 어딨는지 몰라 헤맸다는 것이다. 이씨는 “등을 세 선으로 나눠서 안마를 하라는데 뼈가 어딨는지 모르겠고 요령도 없어서 힘들었다. 힘도 약해 선생님이 걱정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장씨는 조금 달랐다. 장씨가 입학할 즈음에 시각장애인이 안마사를 독점한다는 비난여론이 비등했다. 헌법소원까지 제기됐다. 당연히 시각장애인 안마사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기 힘들었지만 장씨는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배웠다.

성인 한 사람을 안마하는 데 드는 시간은 약 30~40분이다. 단순히 주무르기만 해선 효과가 없다. 증상과 부위에 따라 어루만지고, 주무르고, 두드린다. 손을 잘못 놀리면 아프기만 할 뿐이다.

“마지막 꿈은 가족을 얼굴을 다시 보는 것”

장씨는 안마일이 즐거웠다. 안마사가 천직이라고 느낄 정도였다고 한다. 장씨는 “내가 타고난 맹인이었나보다할만큼 안마가 좋았다. 뼈 하나, 근육 하나를 만지는 게 새로웠고 배우는 과정 자체가 재밌었다. 하루하루가 새로웠다”고 말했다.

장씨는 2008년 2월, 이씨는 2009년 2월 각각 졸업했다. 입학 전과 비교하면 희망을 갖게 됐다. ‘안마원 원장님’이 두 사람의 새 목표가 됐다.

이씨는 우선 졸업 직후 안마원에 취업했다. 한 달 반 정도 일했다. 그런데 안마원 경영이 어려워져 해고당했다. 이씨는 재취업 대신 창업을 결심했다. 2009년 11월 상계동에 안마원을 열었다. 처음엔 찾는 손님이 없어 한산했다. 그러다 안마를 잘 한다는 입소문이 났다. 지금은 한달에 170여명이 찾아온다.

장씨는 좀더 오래 준비했다. 3년간 안마원에서 직원으로 일했다. ‘고수’를 찾아가 한수 배우기도 했다. 자신감이 생기자 장씨는 2010년 10월 의정부역 앞에 안마원을 차렸다. 장씨의 안마원은 장씨 외에도 직원이 7명이나 된다. 지난해 사회복지재단이 선정하는 경기도 우수업체로 선정됐다. 도지사표창도 받았다.

이씨는 “안마를 할때는 통증을 치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시력을 잃은 대신 안마를 배웠고 이제는 누군가에게 건강을 베풀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안마가 좋다”고 말했다.

희망을 찾은 두 사람에게 마지막 남은 꿈이 있다. 이룰 수 없는 꿈이다. 장씨가 시력을 잃었을 당시 딸은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지금은 스무살 어른이 됐다. 장씨는 “딸애의 얼굴이 이젠 가물가물하다. ”고 했다.

이씨도 마찬가지다. 이씨는 “부모마음은 다 같을 것”이라며 “둘째 아들을 앞에 앉혀 놓고 얼굴을 어루만졌더니 아들이 ‘이제 보이냐’고 묻더라”며 씁쓸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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