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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장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이주호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요청으로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그는 위원장직 제의를 수락하면서 ‘고교 한국사 과목 필수화’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의 이 같은 주장이 받아들여져 2012년부터 한국사가 고등학교 필수과목으로 지정됐다.
MB정부 때 고교 한국사 필수과목 관철
“국사 과목이 선택과목이 되면서 안중근 의사를 모르거나 6.25를 숫자로만 인식하는 학생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고교 한국사 과목의 필수화를 주장했고 결국 이를 관철시켰지요. 내년부터는 국사 과목이 수능 필수과목이 됩니다. 선택과목일 때는 검정 교과서도 가능하지만 필수과목이 된 이상 한 번쯤은 국가 주도로 우리 역사를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륜과 전문성을 갖춘 필진들이 참여해 수준 높은 교과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원장은 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했기 때문에 국가가 책임을 지고 역사 교과서를 편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 교과서는 출판사가 제작한 뒤 교육부 인가를 받는 ‘검정’과 달리 국가가 직접 편찬하는 교과서다. 이 원장은 기존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의 경우 교육부로부터 수정명령을 829건이나 받았을 정도로 검정체제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그러나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를 허용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일제시대의 쌀 수탈을 수출로 얘기하는데 일제 36년의 역사는 ‘수탈론’의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일제시대를 거치며 국내 산업시설 등이 근대화된 측면이 있더라도 이는 일본의 압박 속에서 우리가 희생한 결과물로 봐야지요. 일제시대에 대한 역사적 기술은 당시 목숨을 바쳐 독립투쟁을 했던 선조들의 정신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이 원장은 5·16 군사정변 이후에 전개된 권위주의 시대에 대해서도 편향되지 않은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독재를 미화하는 기술도 또 다른 편향이 될 수 있다”며 “다만 당시 산업화의 결실도 긍정하면서 독재를 극복한 과정을 기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육부 검정을 거쳐 출간된 교과서가 사실 오류 등으로 829건의 수정 명령을 받았다는 것은 검정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또 편향성도 문제이지요. 기존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해방 이후 북한의 토지개혁을 ‘무상몰수 무상분배’로 기술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개인 소유의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한 뒤 경작권만 주고 소유권은 주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초등학교에서 우리 역사를 인물사로 배운다면 그야말로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인성교육의 효과까지 볼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장영실과 허준을 통해 과학자나 의사의 꿈을 갖고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에서 참다운 리더십을 배운다면 그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배운 동요는 나이 들어서도 기억에 남습니다. 만약 우리 역사 속의 훌륭한 인물들의 어록을 초등학생들이 가슴에 새기게 된다면 인성교육도 저절로 해결됩니다.”
“우리나라 최대의 문화유산은 한글”
한국문화의 전도사로도 유명한 이 원장은 2013년 9월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원장으로 취임한 뒤 ‘전통과 현대의 소통’을 강조해 왔다. 옛것을 현대로 불러내 대중과 만나게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역사를 통해 배우는 것이 생기고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도 생성될 수 있다는 게 이 원장의 지론이다.
“우리 연구원에는 1980년대 창경궁에서 이관된 왕실도서관인 ‘장서각’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17만 권의 고문헌이 있는데 이런 문화유산이 장서각 안에만 있다면 전시물의 역할에 그치게 됩니다. 문화유산에 이야기를 불어넣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이를 대중과 만나게 해야 합니다. 우리 문화와 역사를 알게 되면 그 속에서 자긍심이 생기고 미래의 방향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원장의 이런 지론에 따라 최근 한중연은 장서각에서 ‘시권(試券)-국가경영의 지혜를 듣다’를 주제로 특별전시회를 열었다. ‘시권’은 과거 선비들이 과거시험에서 글을 지어 올린 답안지를 말한다. 정암 조광조를 비롯해 정약용·박세당·윤선도·송시열 등 당대 내로라하는 선비들의 과거시험 답안지를 전시한 것이다. 이 원장은 시권을 통해 과거 죽음을 무릅쓰고 임금에게 충언한 선조들의 기상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우리 문화유산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한글’을 꼽았다. 과학적 우수성도 내세울 만하지만 한글 창제의 배경이 된 세종대왕의 애민·민본 정신 때문에 가장 위대한 유산으로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여자대학 장점·경쟁력 커” 위기론 일축
이 원장은 2006년부터 4년간 이화여대 총장을 지냈다. 그의 재임 중 이대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유치했다. 당시 이 총장은 서울대·연세대·고려대에 이어 가장 많은 100명의 로스쿨 정원을 인가받는 등 대학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대 총장을 지냈기 때문인지 이 원장도 최근의 ‘여대 위기론’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대가 갖는 장점이 크다며 위기론을 일축했다.
“이화여대 초대 총장을 지낸 김활란 총장은 재직 당시 ‘이대가 언제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느냐’란 기자들의 질문에 ‘국회의원 절반 이상이 여성으로 채워질 때 가능하다’고 대답했습니다.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우리사회는 여성이 가진 능력을 모두 발휘하기 어려운 사회입니다. 남녀가 결혼한 뒤 경력단절 등의 희생을 여성이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성의 기회균등이 실현될 때까지 여대는 존재해야 합니다.”
이 원장은 오히려 여대가 남녀공학 못지않은 장점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여대에 재학하는 여학생들이 리더십이나 사회성을 신장시킬 기회를 더 많이 갖는다”며 “어떤 모임에서나 남학생이 없기 때문에 여성이 리더를 맡아야 하고 여성에게 힘들게 여겨지는 일도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화여대의 경우 교수 중 절반 이상이 여교수이면서 총장도 개교 이래 계속 여성이 맡아왔습니다. 이 때문에 이대 학생들은 학교에 다니면서 ‘나도 열심히 공부하면 교수도 되고 총장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지요. 저의 경우에도 재학 중 그런 꿈을 갖고 교수가 됐고 총장으로도 취임했습니다. 대학 재학 중 진로에 대한 꿈을 갖고 그것에 대한 실현 가능성을 간직하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배용 원장은...
1947년 서울 출생이다. 이화여고와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부터 이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여성연구원장·이화사학연구소장·평생교육원장·이화역사관장·인문과학대학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이화여대 13대 총장으로 재직하며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 포스코청암재단 이사,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이대 총장 퇴임 뒤에는 △대통령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 △문화재청 세계문화유산분과위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이사장 △대법원 사법정책자문위원 등을 지냈으며 2013년 9월 한국학중앙연구원장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