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 '서민주거안정' 실종된 부동산 정책

  • 등록 2014-10-07 오전 6:10:40

    수정 2014-10-07 오전 6:10:40

[이데일리 정수영 사회부동산부 차장] 9·1 부동산 대책 이후 주택시장이 확연히 달라졌다.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늘고, 팔려는 사람들은 신중해졌다. 건설사들은 줄였던 주택사업 비중을 다시 늘리고 있다. 달라진 부동산시장 상황을 보면서 모처럼 정부 정책이 시장에 ‘통했다’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재건축 허용 연한을 40년에서 30년으로 완화하는 등 대대적 규제 완화에 힘을 받은 재건축시장은 호가(집주인이 부르는 가격)뿐 아니라 시세까지 상승세다. 청약가점제 개편이 예고된 가운데 시세 차익을 기대하며 분양시장으로 몰리는 수요자도 넘쳐나고 있다. 이 틈새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기승을 부리는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소)들이 판을 키우는 모양새다.

하지만 정부가 목표로 한 것들과 반대로 흘러가는 상황도 곳곳에서 포착된다. 바로 주거를 포함한 시장 안정화 방안들이다. 우선 주택공급량 조절 문제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주택 공급량과 시기를 조절하는 정책을 펴왔다. 지난해 내놓은 8·28 대책에선 후분양을 하겠다는 사업자에겐 대출이자를 싸게 해주는 등 인센티브를 부여하기로 했다. 올해 나온 9·1대책에서는 주택 공급 방식 개편을 위한 여러 방안을 내놨다.

대규모 공공택지 지정을 2017년까지 중단하겠다는 것이 그 하나다. 또 사업계획승인 이후 착공 의무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고, LH(한국토지주택공사) 분양 물량 일부를 시범적으로 후분양하기로 했다. LH 토지은행을 통해 민간택지 공급 시기도 조절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 정책을 비웃듯 건설사들은 신규 분양 물량을 쏟아내고 있다. 벌써부터 미계약분이 넘쳐나는 등 미분양 급증 사태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정부 정책과 거꾸로 가기는 청약통장 가입자 수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9·1 대책에서 주택청약종합저축과 청약저축의 2년제 이상 상품에 대한 금리를 0.3%포인트(3.3%→3.0%) 낮추기로 하고, 이달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청약통장 가입자 수 조절을 위한 방편이다.

청약 통장은 저금리 기조 장기화로 가입자 수가 크게 늘었다. 주택청약이라는 본 기능이 아닌 재형저축이라는 부수적 기능의 역할 때문이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청약 가입자는 1689만8044명으로 한달 새 13만7633명이 늘었다. 아직 통계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9월 신규 가입자도 이와 비슷하거나 더 늘 것으로 예상된다.

청약통장 가입자가 증가하면서 국민주택기금은 104조를 돌파하는 등 사상 최대의 금액이 쌓이고 있다. 문제는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오히려 손실이 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경우 7910억원의 당기 순손실을 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도 청약통장 가입자가 너무 많아 운용이 오히려 더 힘들다는 반응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9·1대책 발표 직후 “청약통장 이율을 낮추면 가입자가 조금씩 줄지 않겠느냐”면서 “앞으로도 금리에 맞춰 추가 인하해 가입자 수를 조절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내년부터 수도권 청약통장 가입자의 청약 1순위 자격이 2년에서 1년으로 단축될 것이란 예고에 최근 가입자 수는 오히려 증가 추세다.

전세를 매매로 전환하면 전·월세시장이 안정화될 것이라는 정부의 계획도 틀렸다. 집값이 상승하자 전셋값도 덩달아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9·1대책 이후인 최근 전셋값은 집값의 70%를 돌파했고, 월세도 하락세를 멈추고 보합세로 돌아섰다. 집값이 전셋값을 끌어올리는 형국인 셈이다. 시장 활성화란 목표 달성은 일단 성공적일지 몰라도, 서민 주거 안정이란 계획에선 낙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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