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제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요. 자정부터 약 10분 동안은 쓸 수가 없습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님도 저의 이런 ‘신데렐라’ 기질을 알고 크게 노하셨습니다. 저 얄미운 신용카드처럼 24시간 끊김 없이 주인님을 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를 발급한 은행과 주인님이 예금계좌를 튼 은행이 다를 때는 이 시간이 40분씩이나 길어진다고 하니, 죄송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주인님이 생신을 맞은 날이었어요.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 묵겠지”라는 유행어를 입에 달고 사는 주인님은 친구들과 소고기 잔치를 했습니다. 잔치가 끝난 시각은 밤 12시2분. 주인님은 “오늘은 내가 쏜다”고 외치며 계산대로 돌진해 저를 꺼냈지만, 결제가 되질 않았습니다. 우르르 몰려나온 주인님의 친구들. 이 시간에 체크카드 결제가 안 되는지 모르는 친구들은 “돈 없냐? 그냥 우리가 살 테니 다음에 한턱 사라”며 주인님 속도 모르고 신용카드를 긁어댔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은행 전산상의 날짜 변경 작업 때문이랍니다. 자정 무렵에 발생하는 금융거래 정보를 날짜가 바뀌는 데 따라 가르마를 타줘야 하는 데, 이 과정에서 고객정보통제시스템(CICS)과 고객 금융정보데이터베이스(DB2) 등 전산 프로그램을 잠시 멈췄다 다시 구동하게 됩니다. 이때 걸리는 시간이 5~10분 정도지요.
저의 철천지원수 신용카드는 날짜를 바꾸는 동안 BC카드 전산망을 활용해 24시간 중단 없는 거래를 할 수 있는데, 저는 왜 이런 설움을 겪어야 하는 걸까요.
태국의 한 백화점에서 저를 꺼냈다가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던 김석동 금융위원장님도 최근 체크카드 활성화를 위해 이런 ‘신데렐라 현상’을 해결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조만간 저도 신용카드처럼 언제든지 편리하게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할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