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대통령들이 군부, 운동가, 사상가, 최고경영자 출신이라면 그는 ‘시민’ 출신이었다. 그래서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가 꿈꾼 세상은 국회의원으로 처음 당선된 뒤 1988년 7월8일 첫 대정부질문에서 했던 발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좀 없는 세상,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떨어질 것을 알면서 지역주의에 맞서겠다고 부산시장, 부산 동구 국회의원 선거에 네번 도전해 ‘바보 노무현’이 됐다.
그 바보가 내는 울림에 사람들은 공명했고, 지독한 가난에 시달린 상고 출신 변호사인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5년 임기동안 그는 ‘국민통합과 민주주의 완성’에 도전했지만, 끝을 보지 못했다.
임기를 마친 뒤 고향으로 내려가 다시 시민이 됐다. 장군차를 키우고 하천을 청소하며 찾아온 손님들에게,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던 할아버지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참모와 학자를 모아 다시 민주주의의 완성과 진보의 미래를 연구했다.
500만명 넘는 조문객이 그의 영정 앞에서 옷깃을 여몄고, 지금 다시 인간 노무현, 시민 노무현을 생각하고 있다. 그가 목소리는 높았지만, 눈높이는 같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그 일을 자기 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이 희원했던 것 가운데 그나마 싹이 튼 게 하나 있다. 복지다. 그는 퇴임 후 “보수와 진보의 가치 논쟁에서 핵심 쟁점은 결국 복지와 분배”라면서 “나는 분배는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분배정부라고 몰매만 맞았던 불행한 대통령”이라고 아파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지방선거에서 복지가 주요 의제가 됐다. 진보 진영은 보편적 복지를, 성장을 외쳤던 보수정당에서도 제한적이지만 복지 확대를 주창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노동의 유연화는 심화했고, 삶의 보루인 일자리가 무너졌다. 균형 발전과 남북 평화라는 국가적 과제는 그나마 구축됐던 토대마저 파탄 지경이다.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시민에게 요구한 것도 있다. 그의 비석에 새겨진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인식은 노 전 대통령이 시민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는 2004년 탄핵 심판이 기각된 뒤 복귀한 기자회견에서 “한밤중에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촛불의 물결을 봤다.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수준 높은 시민들을 상대로 정치를 하려면 앞으로 누구라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그럼 어디로 가야할까.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결국 유럽 북구식 복지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세상은 군대에서의 장거리 행군 훈련 같은 것이다. 언제든 낙오하는 병사가 생기는데, 내버려두지 않고 이송 차량이 따라와서 무사히 복귀시켜 주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게 22년 전 초선 국회의원 노무현이 국회 단상에서 외쳤던 ‘사람 사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