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수 사장 `기다림이 두렵지 않은 개척자`-FT

권영수 LPL 사장 FT 인터뷰
"남들이 눈 먼저 쓸때까지 기다릴 것"
"회생 위해 고3처럼 매달렸다"
  • 등록 2007-09-10 오전 8:25:48

    수정 2007-09-10 오전 9:23:32

[이데일리 정영효기자] "혈전이 펼쳐지고 있는 50인치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에 지금 뛰어들 필요는 없습니다. 이 시장은 시기가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뛰어드는 시기가 늦춰질 수록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권영수 LG필립스LCD(034220) 사장은 8세대(8G) LCD 생산라인 가동을 서두르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권 사장은 9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고 당분간 구조조정 및 비용절감에 주력할 뜻을 명확히 했다.
 
라이벌 삼성전자(005930)가 지난 8월 8세대 라인을 가동한 데 따른 대응을 늦추겠다는 전략이다. LPL은 내년까지 8G 라인을 가동시키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삼성에 뺏긴 업계 1위 자리를 탈환하는 것도 서두르지 않을 생각이다. 삼성과 샤프 등 경쟁사들의 약진에 조급해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PDP)과의 경쟁 때문에 TV 패널의 경우 선두를 지켜나게는 게 최선은 아닙니다. 폭설이 내릴 때 힘들여 길을 쓸 필요는 없는거죠. 다른 이들이 눈을 먼저 치우기를 기다렸다 가면 힘을 덜 들일 수 있습니다."
 
권 사장이 당면 목표로 삼은 것은 다운사이징을 통한 기업 경쟁력 확보.
 
올해 1월 LPL 사장으로 임명되자마자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부인에게 "당분간 홀로 내버려 두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이후 1년여 동안 권 사장은 가정 대소사를 멀리했다.
 
과잉공급으로 인한 평면 패널 가격의 하락으로 LPL이 4분기 연속 적자에 허덕이던 회사를 책임진 경영인이 펼친 배수진이었다. 라이벌 삼성전자에게 세계 1위 자리를 뺏기고, 현금 흐름(캐쉬 플로)이 부진하면서 신규 투자 또한 여의치 않던 시기였다.
 
권 사장은 회사를 정상화시킨 지난 1년여를 `고3학생`에 비유했다.
 
"기업 회생의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인 삶을 포기하고 대입시험을 코앞에 둔 고3 학생처럼 살기로 결심했었습니다"
 
신문은 권 사장의 이같은 배수진에 힘입어 LPL가 지난 2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내년에 걸쳐서 평판 가격이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향후 전망은 더욱 밝다고도 설명했다.
 
권 사장이 취임 1년도 안돼 실적을 개선시킨 원동력으로 신문은 과감한 구조조정과 비용절감을 들었다. 권 사장의 별명은 `칼`,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동생인 구본준 전 LPL 사장 대신 최고재무책임자(CFO)였던 권 사장을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취임 이후 권 사장은 전체 근로자(2만2000명)의 10%를 감원했다. 올해까지 5%를 더 줄인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 사장의 구조조정은 노조의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았다. 권 사장은 이를 철저한 생산성 분석 덕분으로 돌렸다.
 
"5명이 들 수 있는 돌을 10명이서 옮기려 해보세요. 움직일 수가 없어요.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하겠거니 하면서 최선을 다하지 않거든요. 5명이 할 수 있는 일은 5명이 할 때 최선의 결과가 나옵니다. 사람이 많으면 생산성이 떨어져요"
 
생산성 분석에 기반한 구조조정은 비용절감으로 이어졌다. 2분기 동안 LPL은 12%의 비용을 줄였다. 올 한해 동안은 30% 가량을 절감한다는 계획이다.
 
몸집 줄이기에 만전을 기하는 대신 권 사장은 투자에 있어서는 보수적인 접근을 꾀했다. 신규 투자를 최소화하는 대신 기존 설비를 최대한 활용해 영업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계획이다.
 
"생산설비의 능력은 무제한적인데 이를 사용하는 인간의 지능이 제한적인 것이지요. 기존 시설을 더 활용함으로서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권 사장이 이끄는 LPL 앞에 장밋빛 청사진만 놓여 있는 것은 아니다. 합작 지분을 청산하려는 필립스 대신 새로운 동업자를 찾아나서야 하는 과제가 놓여있다. 기술 혁신에 앞장서는 기업 이미지를 구축한 전(前) 사장과는 달리 다운사이징에만 치중한다는 이미지 악화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권 사장은 수평적 의사소통 구조를 정립해 기업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권위주의적인 한국의 경영 문화만 타파해도 기업 경쟁력이 향상될 것이라는 지론이다.
 
"권위주의적 경영이 판치던 시대는 갔습니다. 말이 안된다고 생각할 땐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는 문화를 확립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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