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끄덕끄덕] 노희경의 '우리' 박해영의 '나'

  • 등록 2022-05-19 오전 6:15:00

    수정 2022-05-19 오전 6:15:00

[정덕현 문화평론가]드라마를 오래도록 봐온 필자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는 요즘 볼만한 드라마가 뭐냐는 것이다. 지상파에서 케이블, 종편을 거쳐 이제는 OTT까지 새로운 플랫폼들이 생겨나면서 드라마들은 너무나 많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니 너무 많아서 뭐가 뭔지 도통 모르겠는 시청자들이 이런 질문을 필자에게 던지는 건 당연해 보이지만 답이 그리 쉽진 않다. 이렇게 많다는 건 이제 우리가 다양한 취향대로 무언가를 선택해서 소비하며 살아가는 삶 속에 들어왔다는 것이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큰 감명을 주는 작품이라고 해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시큰둥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볼만한 드라마를 꼽아달라면 딱 두 작품이 떠오른다. 하나는 JTBC <나의 해방일지>고 다른 하나는 tvN <우리들의 블루스>다. 전자는 <나의 아저씨> 같은 많은 이들이 인생드라마로 꼽는 전작을 낸 박해영 작가의 작품이고, 후자는 이른 석자로 충분한 노희경 작가의 작품이다. 작품이 갖는 성취나, 작가 특유의 색깔 같은 것들이 극명하게 차이를 보이는 두 작품이고, 그래서 보는 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두 작품을 자신 있게 꼽을 수 있는 건 적어도 작가가 어떤 자신의 메시지나 목소리를 온전히 전하는 작품들이라는 점 때문이다. 요즘처럼 기획 작품들이 많아진 시대에 상품성으로 포장되고 만들어지기 마련인 그런 기획물들과는 달리, ‘작품’이라는 표현에 걸맞는 드라마들이다. 게다가 이 두 작품은 모두 한때 드라마들이 원작으로 삼곤 했던 문학이 가진 맛들을 느낄 수 있는 특징이 있다. 그저 서사로만 흘러가지 않고 대사의 말맛이나 독특한 상황이 그려내는 우리네 삶에 대한 은유 같은 게 살아있다는 것.

이렇게 장황하게 이들 두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두 드라마가 담아낸 세계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떤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게 해서다. 먼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차이의 키워드는 ‘나’와 ‘우리’다. 어째서 박해영 작가는 ‘나’에 집중하고 노희경 작가는 ‘우리’에 집중하고 있는 걸까.

이런 작가의 선택이 우연이 아니라는 건 이들 작가들의 전작들을 통해서 보여지는 일관된 관심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박해영 작가는 전작에서도 <나의 아저씨>라는 제목으로 역시 ‘나’를 키워드로 내세웠다. 그래서 마치 <나의 해방일지> 역시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노희경 작가는 일련의 전작들이 여러 인간군상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로 꾸려져 왔다는 점에서 역시 ‘우리’를 일관되게 들여다본 바 있다. <라이브>가 그랬고, 무엇보다 <디어 마이 프렌즈> 같은 작품은 노년의 삶을 여러 인물들과 그 관계를 통해 담아냄으로써 옴니버스 구성으로 되어 있는 <우리들의 블루스>와 유사한 느낌을 줬던 작품이었다.

노희경 작가가 ‘우리’에 관심을 갖는 건, 가족은 물론이고 사회에서도 함께 살아가는 삶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미이고 가치인가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노희경 작가는 관계 속에서 깊은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그걸 풀어내는 힘도 바로 그 관계 속에 있다는 이야기를 줄곧 해왔다. <우리들의 블루스>가 옴니버스로 꾸려져 매회 ‘한수와 은희’, ‘영옥과 정준’, ‘동석과 선아’ 같은 부제에 두 명씩 짝을 이룬 이름이 등장하는 건 그래서다. 이들은 결코 쉽지 않은 현실 때문에 무너져 내리고 때론 깊은 절망의 늪에 빠지지만 저편 누군가 내밀어준 손이 있어 일어난다. 80년대 민주화 시대를 경험했던 분들이라면 노희경 작가가 보여주는 이러한 ‘함께 하는 삶’에서 끈끈한 유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당대야 정치적인 이슈로 연대했던 ‘함께’지만 그 힘은 이제 일상 속으로 들어와 변주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노희경 작가와 달리 박해영 작가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의 관점과 ‘나’의 해방이나 구원 혹은 위로에 더 집중한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그만큼 파편화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섣불리 ‘우리’로 엮어 어떤 일반화된 기준으로 제시되는 행복이라는 것이 사실은 허상이 된 현실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함께 하면 더 나은 세상을 향해 갈 것만 같지만, 사실은 ‘동질화’되고 ‘획일화’된 사회가 만들어내는 ‘가짜 행복’, ‘가짜 위로’도 만만찮게 우리를 권태의 늪으로 빠뜨린다. 로또 하나를 사서 될 지도 모른다는 섣부른 희망을 가진 채 일주일을 살아가지만 결코 희망은 현실이 되지 못한다. ‘행복지원센터’라는 복지부서까지 만들어져 마치 회사가 행복을 지원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센터에서 일하는 직원이 행복하지도 않은데 늘 웃는 얼굴이 습관이 되어 괴롭다고 토로하는 그런 현실 속에서 섣부른 ‘우리’와 ‘함께’로 엮어진 일반화는 위험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래서일 게다. 박해영 작가가 굳이 ‘우리’가 아닌 ‘나’에 집중하는 것은 사회가 막연히 상정해 놓은 평범한 삶, 평범한 행복 같은 것들이 그 정해진 틀 안에서 상처받은 우리들이 서로 막연한 희망을 이야기하거나 위로를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한 변화에서만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다. 과거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독재 같은 분명한 적들과 싸우기 위해 ‘우리’가 됐고 그렇게 연대했지만, 이제 눈앞의 독재가 치워진 우리는 보이지 않는 정교한 사회적 틀에 갇혀 있게 됐다. 남들 다 갖는 욕망을 추구하는 ‘평범’한 삶을 이상화함으로써, 평범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게 하는 삶.

‘우리’라는 단어는 여전히 소중하다. 함께 해나가야 이 모진 현실 속에서 버텨낼 수 있어서다. 하지만 그만큼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은 우리를 강조하며 실상은 평범과 보편을 강요하는 세상을 냉철하게 들여다볼 줄 아는 ‘나’다. 그러니 제발 필자에게 요즘 무슨 드라마가 볼만 하냐고 묻지 말아 달라. 자기 눈으로 보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진짜일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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