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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89) 회장이 긴 침묵을 깼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후폭풍에 항공주와 금융주를 줄줄이 손절매하며 명성에 금이 갔던 그가 팬데믹 국면에서 처음 꺼내든 카드는 ‘에너지’다. 미국 도미니언 에너지의 천연가스 부문을 97억달러(약 11조6000억원)를 투자해 인수하기로 한 것이다. 비대면 언택트가 아닌 중후장대 전통산업을 택한 건 의외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잇딴 투자실패로 “한물 갔다”는 비아냥까지 들었던 그에게 월가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도미니언 천연가스에 12조원 전격 투자
5일(현지시간) 경제전문매체 CNBC 등에 따르면 버크셔는 도미니언의 천연가스 운송·저장 부문 자산을 40억달러에 전격 인수하기로 했다. 버크셔가 이 회사의 부채 57억달러까지 떠안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체 인수 비용은 100억달러에 가깝다. 한화로 12조원에 육박하는 대형 투자다. 인수 주체는 지주사인 버크셔 아래에 있는 자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 에너지다. 도미니언은 천연가스 외에 풍력, 태양광 등 에너지를 생산하는 회사다.
현재 버크셔 해서웨이 에너지가 미국 천연가스 운송 분야에서 차지하는 시장점유율은 8% 정도인데, 이번 인수로 18%까지 오를 것이라고 CNBC는 전했다. 이번 거래는 규제당국의 승인을 얻은 후 올해 4분기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투자에 월가의 시선이 집중된 건 이유가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버핏 회장의 첫 대규모 투자여서다. 버크셔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아메리칸항공, 델타항공, 사우스웨스트항공, 유나이티드항공 등 미국 4대 항공사의 주식을 전량 처분했다. 버핏 회장은 당시 손절매를 두고 “(코로나19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실수였다”고 밝혀 화제를 낳았다.
버핏 회장의 고민은 올해 5월 연례 주주총회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는 “매력적인 그 어떤 것도 찾기 어렵다”며 “투자할 만한 이렇다 할 대상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버크셔의 1분기 현금이 1370억달러로 역대 최대였다는 점은 그의 고민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일각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무차별 돈 풀기 이후 항공주 등이 다시 반등하자 “버핏 회장이 감을 잃었다”는 혹평까지 나왔다. 버크셔는 올해 1분기 497억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노회한 투자자 전락? 투자의 신 명예 회복?
이번 대형 투자는 그 연장선상에서 여러 해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그의 첫 선택이 천연가스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버크셔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스메드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빌 스메드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현재 에너지 같은 원자재 부문이 저평가돼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포스트 코로나 주역으로 꼽히는 언택트가 아닌 전통산업을 택한 것은 다소 의외라는 평가다. 버핏 회장은 2008년 골드만삭스 같은 금융주를 주요 투자처로 삼았고, 큰 수익을 올린 바 있다.
당분간 월가의 시선은 막대한 현금을 무기로 ‘기업 사들이기’를 시작한 버핏 회장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릴 전망이다. 버핏 회장 입장에서는 90세를 앞둔 한물 간 투자자로 전락할지, 투자의 귀재로서 명예 회복을 할지 기로다.
한편 천연가스 부문을 매각한 도미니언은 풍력, 태양광 등 친환경 에너지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화석연료에 대한 규제가 강해지고 있는 게 그 기저에 있다. 도미니언은 전력·에너지 분야에서 시가총액이 미국 내 2위인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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