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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외 경제흐름이 심상찮게 흘러가고 있지만 우리나라 경제정책의 싱크탱크인 한국은행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한은의 근본 역할인 통화정책에서조차 한은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난마저 나온다. 소극적인 태도 탓에 한은이 통화정책이라는 큰 칼을 쥐고도 우리 경제의 선순환 구도에 전혀 자극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박사 145명 있으면 뭐하나…맹탕 보고서만” 국감서 비난
한국은행의 연구조사 기능에 대한 비난은 국정감사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박명재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국감에서 “박사만 145명으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두 배인데, 경제현안에 대한 보고서는 보기 드물고, 발간하는 보고서도 두루뭉술하다”고 지적했다. 한은 전체 직원수는 2017년말 기준 2386명이다. 직원 100명 중 6명은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얘기다.
소득주도성장, 가상화폐 등 주요 현안이 경제 이슈로 부각될 때에도 한은은 다른 정부부처 뒤에 숨었다.
한은 내부적으로는 어마어마한 양의 보고서를 발간한다고 항변하지만, 대부분 내부에서만 보유하거나 일부 발췌해 알맹이는 빠진 ‘맹탕’ 자료들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기준금리를 예측할 수 있는 선행지표가 국내에서는 사실상 처음 나오는 것이어서 금융시장 참가자들 사이에서 관심이 높았다. 하지만 한은은 지난해 11월 금통위 어휘록 분석 결과는 물론 1년 전 분석 결과에 대해서도 구체적 사례를 밝히기를 거부해 반쪽짜리로 보고서라는 비난을 받았다.
한은 내에서도 이같은 소극적 행태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한은 관계자는 “설령 현재 통화정책에 대한 오해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저런 분석들을 하고 있다는걸 보여줘야한다”며 “외부의 피드백을 받지 않으면 우리만의 리그에 그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제정책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한은이 경제 현안에 대해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는 있다. 하지만 중앙은행은 경제 전반에 관심을 갖고 간접적이라도 의견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이 통화정책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중요한 분야는 의견을 내야 한다”며 “최근 논란이 된 고용시장 문제 등 정부에 부담을 주더라도 해야할 얘기는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극적인 한은…금리결정 ‘실기론’ 자초
이 때문에 시장은 한은의 기준금리 결정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꺼꾸로 움직이는 경우도 나타난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지난해 11월 30일 국고채 3년물 금리는 1.897%였지만 한달 뒤인 연말에는 1.817%로 80bp(1bp=0.01%포인트)나 떨어졌다.
한 정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한은은 선제적으로 액션을 취해야하는데 시장보다 늦다”며 “시장이 더이상 한은의 코멘트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부동산 정책은 세금으로 규제할 것이 아니라 금리가 더 적합한 수단인데 한은은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며 “한은은 경제안정과 경제성장 등도 업무영역인 만큼 간접적인 코멘트라도 해야하는데 너무 조용하다”고 비판했다.
과거 정권에서 기재부 통화국이라는 오명을 썼던 한은이 이번 정권에서도 통화정책에서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금통위원은 “한은은 시장과의 커뮤니케이션 측면에 있어 통화정책의 큰 틀조차도 명확히 제시하지 않고 오락가락한다”며 “한은의 목표가 물가관리임에도 불구, 한은이 경제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고 이를 토대로 어떻게 물가수준을 관리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설명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