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제 맥주 양조업체 ‘맥파이 브루잉’은 제주도에 양조장을 두고 질좋은 맥주를 공급한다. (사진=맥파이) |
|
[이데일리 성세희 기자] 약 5~6년 전부터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경리단길 후미진 뒷길에 외국인이 모였다. 삼삼오오 골목 구석에 걸터앉아 구릿빛이 도는 맥주를 마셨다. 당시만 해도 테이블이 아닌 길거리에 앉아서 술을 마시는 ‘길맥’ 광경은 생경했다. 이곳은 수제 맥주 제조업체이자 맥줏집인 ‘맥파이(Magpie)’와 ‘더 부스(The booth)’가 나란히 들어선 길이었다.
두 가게는 외국인이 창업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맥파이는 미국과 캐나다 국적 외국인 4명이 2012년 공동 창업한 곳이다. 더 부스도 전 영국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인 다니엘 튜더 등이 2013년 지인과 공동 창업한 맥줏집이다. 두 곳은 맥주 안주가 피자란 점도 같다. 우리가 ‘치맥(치킨·맥주)’를 즐긴다면 외국인은 ‘피맥(피자·맥주)’을 찰떡궁합으로 여기는 셈이다.
맥파이와 더 부스는 카스 맥주나 하이트 등인 페일 라거가 주류인 우리나라 맥주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킨 곳이다. 맥파이는 미국식 페일 에일(덜 진한 에일 맥주)과 IPA(인디아 페일 에일), 영국식 진한 에일 맥주인 포터(Porter)와 독일식 필스너 라거 쾰쉬(Kolsch) 등을 생산한다.
| 더부스 브루잉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 매장. 이곳을 시작으로 서울 각지에 더부스 매장을 열었다. (사진=더부스) |
|
더 부스는 처음엔 빌스 페일 에일(Bill’s Pale Ale) 한 종류만 만들었다. 그러다 2014년 세계 3위권 맥주 제조자(Brewer) 미켈러(Mikkeller)와 협업해 만든 ‘대동강 페일에일’로 인기를 끌었다. 맥주 이름은 창업자인 튜더가 2012년 이코노미스트에 쓴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못하다’는 내용의 칼럼에서 유래했다. 이 맥주는 생맥주 외에 병맥주로도 만들어져서 전국으로 유통된다.
이곳은 지난 5~6년 사이 유명해지면서 여러 지역에 체인점을 냈다. 특히 더 부스는 경리단길 외에도 서울에만 8개 매장이 있다. 또 맥파이에 직접 가지 않더라도 여러 술집에서 맥파이가 제조한 수제 맥주를 마실 수 있다. 두 회사는 전국 유통망을 갖춘 대규모 수제 맥주계 ‘공룡’으로 떠올랐다.
그래도 원조가 최고다. 추운 날이 가고 따뜻한 봄볕이 비친다. 아무렇게나 자른 피자 한 조각을 든 채 갓 뽑은 생맥주를 들고 길가에 걸터앉으면 새삼 행복하다. 봄이 무르익고 여름이 다가올수록 길거리에서 마시는 시원하면서도 향긋한 맥주 한 잔은 간절하다. 사실 여름엔 좁은 골목이 미어터지도록 손님으로 북적이는 곳이다. 사람이 덜 찾는 적당한 봄날 주말에 ‘길맥’을 즐기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