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은 또다른 권력…당신은 뭘 드십니까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반다나 시바│312쪽│책세상
  • 등록 2017-12-13 오전 5:04:00

    수정 2017-12-13 오전 5:04:00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프랑스 법관이자 미식가인 앙텔름 브리야 사바랭(1755∼1826)은 그의 저서 ‘미각의 생리학’에 이렇게 적었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보라. 그러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하겠다.” 이 말은 오늘날의 식탁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평범한 직장인의 저녁식탁을 한번 보자. 막 끓인 라면이나 배달 치킨 혹은 즉석밥으로 식사를 때우는 일이 잦다. 흔히 먹을거리가 풍족한 상류층이 비만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는 얘기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내놓은 ‘2016 비만백서’에 따르면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고도비만 이상의 비율은 저소득층일수록 높다. 비교적 가격이 싼 정크푸드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게 주된 이유다. 고소득층은 건강식을 자주 찾아 먹는 반면, 돈과 시간적 여유가 턱없이 부족한 저소득층은 저렴한 가공식품이나 패스트푸드를 자주 섭취할 수밖에 없는 구조는 이미 다 아는 현실이다.

책은 음식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도 출신의 생태사상가이자 운동가인 저자는 산업화·세계화한 농업의 현실을 고발하는 데서 출발해, 산업농의 문제가 어떻게 생태파괴와 기아, 빈부격차와 전쟁으로까지 연결되는지를 포착한다.

오늘날 식량은 거대 자본의 일개 상품이자 이윤을 내야 하는 투자의 대상이 됐다. 홈쇼핑채널에서는 먹기 좋게 포장한 식품을 밤낮 가리지 않고 판다. 김치를 사다 먹는 가구도 크게 늘었다. 하지만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이 어디서 어떻게 생산됐는지 대부분 상상하지 않는다. 저자는 “지금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고 있는 건 화학비료와 제초제, 유전자조작식물(GMO), 생명공학과 결합한 거대 기업”이라면서도 “하지만 알고 보면 실제는 이와 다르다”고 지적한다.

산업농은 ‘세계를 부양하고 있다’는 명분 아래 늘 은폐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로인한 폭력적 피해는 지구를 완전히 병들게 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실제로 영양실조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인구는 오히려 10억명으로 늘었다. 나아가 20억명의 인구가 비만·당뇨 등의 질병으로 고통받는다. 이윤 탐욕에 상승한 식량가격은 식량폭동의 원인이 됐다. 저자에 따르면 거대 농기업에 의한 토지강탈·토지소실로 수입이 감소하거나, 식량 불안 등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세계 인구도 무려 15억명에 달한다.

생물 다양성의 붕괴는 더 처참하다. 이제까지 7000여종이 넘는 생물이 인류를 먹여 살렸다면 오늘날엔 단 30종의 작물이 인류식단에서 90%의 칼로리를 제공한다고 썼다. “20세기 초 미국 7098종의 사과 가운데 96%는 사라져버렸고, 양배추 종류의 95%, 토마토 종류의 81% 역시 자취를 감췄다.” 1995년 유엔 의조사에 따르면 세계 농지식물의 75%가 멸종했다.

책은 식탁 위 ‘작은 콩’ 하나를 달리 보게 만든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먹고 있는가. 저자의 일성은 가슴을 친다.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화학비료가 아니라 살아숨쉬는 토양이고 벌과 나비다.” 거대한 단일경작이 아니라 생물 다양성을 지키는 소농이자 기업이 아닌 여성이야말로 식탁의 진짜 주인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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