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반쪽짜리 가계부채 대책

  • 등록 2017-10-23 오전 6:00:00

    수정 2019-03-11 오후 1:42:56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노무현정부 경제상황은 초반부터 암울했다. 버블과의 전쟁에 악전고투를 거듭했다. 전임 정권부터 불기 시작한 투기바람이 광풍으로 돌변하며 부동산시장이 투기장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아파트 분양권 전매 허용, 재당첨 제한기간 폐지, 양도세 면제, 은행의 대출규제 대폭 완화…. 김대중정부 시절 대대적인 부양책의 후폭풍이었다. 흥청망청 파티가 끝난 후 비용청구서만 넘겨 받은 꼴. 바로 전임 정권의 굴레다.

정책은 일정 시차를 두고 효과를 드러낸다. 지금 쓴 약이 나중에는 보약이 될 수 있지만 당장의 달콤함은 미래의 고통으로 남는다. 눈에 보이는 실적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단기 미봉책. 예견되는 부작용에도 버블을 통한 성장의 유혹에 노출되는 건 정책의 단기화·단선적 접근의 폐해다.

문재인정부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정권 초부터 부동산투기와 눈덩이 가계부채가 뇌관으로 떠오른다.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4년 ‘한여름에 겨울옷 입는 격’이라며 대출규제의 빗장을 대폭 풀어버린 결과다. 건설경기 활성화로 2%대에 갇혔던 성장률이 그해 반짝 3%대로 반등했지만 2∼3년 후 그 후유증은 부메랑으로 돌아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

부채를 통한 성장모델, 특히 부동산 가격상승을 통한 경기회복 전략은 양면성을 지닌다. 부의 효과(wealth effect)를 통해 소비여력을 키우지만 필연적으로 버블을 잉태한다. 가계대출은 불어나고 금리변동, 주택가격 하락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이 과정에서 경제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는 고조된다.

정부가 통상 내세우는 전가의 보도는 무차별적 대출규제, 이른바 총량규제다. LTV(주택담보대출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 등 금융규제의 칼날을 일률적으로 들이대 140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부채총량을 줄이는 일이다. 저소득 다중채무자 등을 겨냥한 부채의 질적 개선은 도외시한 채 일반 대출자까지 잠재적인 투기자로 보는 편의주의적 접근 방식이다.

총량규제는 획일적 경직적이다. 정작 자금이 필요한 실수요자의 피해는 불을 보듯 훤하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대출자일 수록 은행, 2금융권, 제도권 밖 사채시장으로 도미노처럼 내몰린다. 거시적 관점에선 불가피한 선택일지 모르지만 미시적 관점에선 대출자의 금융선택권을 불필요하게 제약하는 반쪽짜리 정책툴이다.

8.2부동산 대책 2개월여만에 가계부채 대책이 첫 선을 보인다. 윤곽은 드러났다. 신 DTI,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등 다주택자를 겨냥해 이전보다 강도 높은 대출규제책이 나올 듯하다. 그러나 파격은 없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 기존 대책의 답습일 공산이 크다. 전임 정부 시절 1년이 멀다하고 나온 대책의 기본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가계부채와 부동산가격은 동전의 양면이다. 가계부채 문제를 부동산 시장의 종속변수로 보는 단편적 발상으로는 백약이 무효다. 가계 전반의 소득창출, 거시경제 상황을 감안한 금리운용. 다양한 정책조합(policy mix)과 통합적 접근을 통해 가계부채의 연착륙을 유도할 일이다. 가계부채 관리와 부동산시장의 활성화, 그 사이에서 반복되는 냉온탕 정책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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