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은 일정 시차를 두고 효과를 드러낸다. 지금 쓴 약이 나중에는 보약이 될 수 있지만 당장의 달콤함은 미래의 고통으로 남는다. 눈에 보이는 실적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단기 미봉책. 예견되는 부작용에도 버블을 통한 성장의 유혹에 노출되는 건 정책의 단기화·단선적 접근의 폐해다.
문재인정부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정권 초부터 부동산투기와 눈덩이 가계부채가 뇌관으로 떠오른다.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4년 ‘한여름에 겨울옷 입는 격’이라며 대출규제의 빗장을 대폭 풀어버린 결과다. 건설경기 활성화로 2%대에 갇혔던 성장률이 그해 반짝 3%대로 반등했지만 2∼3년 후 그 후유증은 부메랑으로 돌아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
정부가 통상 내세우는 전가의 보도는 무차별적 대출규제, 이른바 총량규제다. LTV(주택담보대출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 등 금융규제의 칼날을 일률적으로 들이대 140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부채총량을 줄이는 일이다. 저소득 다중채무자 등을 겨냥한 부채의 질적 개선은 도외시한 채 일반 대출자까지 잠재적인 투기자로 보는 편의주의적 접근 방식이다.
총량규제는 획일적 경직적이다. 정작 자금이 필요한 실수요자의 피해는 불을 보듯 훤하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대출자일 수록 은행, 2금융권, 제도권 밖 사채시장으로 도미노처럼 내몰린다. 거시적 관점에선 불가피한 선택일지 모르지만 미시적 관점에선 대출자의 금융선택권을 불필요하게 제약하는 반쪽짜리 정책툴이다.
가계부채와 부동산가격은 동전의 양면이다. 가계부채 문제를 부동산 시장의 종속변수로 보는 단편적 발상으로는 백약이 무효다. 가계 전반의 소득창출, 거시경제 상황을 감안한 금리운용. 다양한 정책조합(policy mix)과 통합적 접근을 통해 가계부채의 연착륙을 유도할 일이다. 가계부채 관리와 부동산시장의 활성화, 그 사이에서 반복되는 냉온탕 정책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