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첫 ‘이재용식 인사’..전면 세대교체 나올 듯
삼성전자는 앞서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의식을 잃은 이후 자리를 비우면서 이재용 부회장 체제로 승계에 속도를 붙여왔다. 한동안은 기존 ‘이건희의 사람들’이 승계를 위한 ‘연착륙’을 꾀하며 자리를 지켜왔지만, 이제는 ‘이재용식 인사’를 통한 새로운 체제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재계에서는 사실상 이번이 처음으로 이재용 부회장 체제에서 이뤄지는 첫 인사라는 점에 주목한다. 이 부회장은 그 동안 성과에 입각한 실용주의와 소통을 중요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수행 직원 없이 여객기 일반석을 이용하는 등 소탈한 성격에 미래전략실 해체를 결정하는 등 ‘탈 권위주의’에도 관심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직급 체계 단순화를 결정한 것도 이런 기조의 연장선상이란 해석도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1심 공판 막바지였던 지난 8월 3일 법정에서 진행된 피고인 신문 중 “창업자(故 이병철 회장)나 회사를 거의 재창업한 회장(이건희 회장)과 달리 3대째인 제 경우에는 과거와 다른 상황을 맞이했다”며 “사회적으로나 회사 임직원·고객들에게 더 인정받아야 한다. 사회의 인정을 받으면서 비전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실리콘밸리 소재 연구개발(R&D) 조직의 인사가 부상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권 부회장도 삼성전자 입사를 미국 소재 반도체연구소에서 했었고, 최근 삼성전자리서치아메리카(SRA) 소속이던 정의석 부사장이 인공지능(AI) 기술인 ‘빅스비’ 책임자로 본사에 부임하기도 했다. 손영권 사장이 이끄는 삼성전략혁신센터(SSIC) 소속 인사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고전략책임자(CSO)를 맡고 있는 그는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삼성 최고경영자(CEO) 서밋’에서 “삼성은 이제 데이터 회사”라며 데이터에 기반한 사업 구조를 강화해나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삼성전자의 주요 사장·부사장급 인사는 대개 50대 중반 이상, 60대 초반까지 걸쳐있어 세대 교체에 대한 필요성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반드시 젊은 인사만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현재 삼성전자의 주요 실적을 구성하는 두 가지 품목인 메모리반도체와 스마트폰이 점차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절박함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가 내년 1321억6500만달러로 고점을 기록한 뒤 상승세가 꺾여 2019년 1205억5000만달러, 2020년 1176억7000만달러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스마트폰 시장의 경우 이미 정체 전망이 상당하고, 여기에 중국이나 인도 등 신흥국가의 제조사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권 부회장도 역시 용퇴의 변에서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IT 산업의 속성을 생각해 볼 때, 지금이 바로 후배 경영진이 나서 비상한 각오로 경영을 쇄신해 새 출발할 때”라며 “미래의 흐름을 읽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내 최대 기업이자 동시에 글로벌 기업으로서 윤리적인 측면을 철저히 해야 할 삼성전자의 입장에서 이 참에 지배구조나 의사결정과정을 혁신적으로 바꿔야 할 필요성이 강조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만일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할 경우, 대표이사 지명에는 ‘안정’을 택할 확률도 있다. 너무 급격히 조직을 변화시킬 경우 자칫 위험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 이 때문에 경영지원실장인 이상훈 사장이나 CE부문장인 윤부근 사장 등이 대표이사 후보군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기존 인물과 새로운 인물간의 조화를 통한 안정적 변화를 택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
한편 삼성전자는 당초 연말 정기인사 시기인 12월 첫 주보다 다소 이른 시기에 사장단을 비롯한 임원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권 부회장의 용퇴 발표가 이달 중순에 나왔고, 이미 후임자에 대한 추천도 마련해둔 만큼 다음달 중으로는 관련 사항 진행이 마무리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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