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떠나기. 책의 첫머리에 쓰인 문구다. 목차를 들여다보자. ‘떠난다’부터 시작해 ‘돌아간다’로 끝을 맺는다. 그저 여행기 정도로 생각하면 오해다. 자신의 내면과 대면할 수 있도록 돕는 사유의 기술을 서술한 철학책이다.
프랑스 출신 철학자이자 언어학자인 저자는 휴가지의 해변이야말로 철학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고 한다. 항구도시 세트에서 태어난 저자의 개인사를 넘어서라도 해변은 철학의 기원에 닿아 있다. 실제로 철학이 태동한 곳은 기원전 7세기 지중해 반대편 해안의 항구도시 밀레투스로 전해진다. 지금은 터키 영토에 속하는 아나톨리 지방, 사모스섬 남쪽에 위치한 이곳은 기원전 1000년 이전엔 이오니아 지방의 중심이었다. 여름이면 30도를 웃도는 전형적인 휴가지다. 저자는 요즘 그곳 해변을 거니는 우리의 고민과 생각이 당시 여명기 철학자들의 사유에 맞닿아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책이 철학의 역사를 읊거나 큰 개념을 설명하는 건 아니다. 이런 식이다. 휴가지를 향해 떠나는 순간부터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이뤄지는 일련의 행위를 좇으며 사유하는 방식. 떠나다, 도착한다, 놀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옷을 벗는다, 높이 올라간다, 명상한다, 읽는다, 걷는다, 웃는다, 사랑한다, 모래 위에서 논다, 햇빛을 받는다, 다시 돌아간다 등. 누구나 휴가지에서 겪는 이 행위 사이사이 철학하는 법을 알려주는 거다. 아이들의 모래놀이를 깊은 사색과 견주고, 높은 곳에서 아래를 굽어볼 때는 관점의 변화를 실천하게 한다.
여행은 ‘놀람’의 연속이다. 저자는 이런 놀람에 대해 ‘놀라는 것 이외에 철학의 다른 근원은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붙여놓는다. 놀란다는 것은 새로운 사고를 받아들이고 세상과 타인,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방식을 수용하는 것이란 뜻이다. 결국 사유는 놀람을 안겨주는 세상에 복귀하는 것이란 설명이다.
진면목은 지금 나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생각할 기회를 주는 데 있다. 해변의 철학자는 말한다. “자신의 삶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을 갖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좀 더 나은 삶을 찾을 수 있기를, 태양의 사색을 갈무리함으로써 세상의 겨울을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여행가방에 쏙 들어갈 두께인 만큼 챙겨가 한번 읽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