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逆) 황혼이혼’ 소송이 늘고 있다. 재산분할을 요구하며 아내가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황혼 이혼’이 아닌, 남편이 아내에게 이혼과 재산분할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에만 매달리다 퇴직한 후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설 곳이 없는 아버지들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김모씨는 퇴직하고 수입이 끊기자 부인에게 닦달을 당하다가 견디지 못하고 이혼소송을 냈다. 2009년 20년 가까이 다닌 회사를 명예퇴직한 김씨는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집에서 소일하며 지냈다. 김씨의 부인은 돈을 벌어오라고 바가지를 긁다가 나중에는 욕설과 폭행까지 했다. 김씨는 부인의 폭행에 귀까지 멀었다. 법원은 가정 파탄의 책임을 김씨의 부인에게 물었다.
은퇴후 집안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정 불화로 이혼한 경우도 있다.
한 가사소송 전문변호사는 “어떤 의뢰인은 ‘거세당한 기분’이라고 호소하기도 한다”며 “집에서 무시당하면서 상처입은 자존심을 소송을 통해 회복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부장제가 무너지고 우리사회가 양성평등 시대로 변화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구정우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남성중심 사회를 살아온 나이 든 세대들은 식구에게 가장으로서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면 공격적으로 변한다”며 “여성도 마찬가지로 남성이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실망하고 분노한다. 양쪽 모두 가부장제의 희생자”라고 설명했다.
구 교수는 “노인복지가 발달해 노후가 보장돼 은퇴 후에도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면 완화되겠지만 지금처럼 고령층 빈곤이 문제가 되는 사회에서는 가정내 갈등이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며 “노인복지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