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거품일땐 거품인줄 모른다

  • 등록 2015-03-24 오전 6:00:00

    수정 2015-03-24 오전 6:00:00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최근 여의도 KDB대우증권 본사에서 한 비상장 기업에 대한 투자설명회가 열렸다. 많이 알려진 기업은 아니지만 유망하니까 투자자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며 본사 영업부에서 마련한 설명회였다.

설명회 내용은 누가 봐도 끌릴 만 했다. 해당 기업은 유전자 치료제 개발업체로 올해 매출액이 작년 대비 8배 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며 내년 상반기 상장을 계획 중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세미나 외부 공개에 대해 영업부는 상당히 민감해했다. 일부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니 세미나 내용이 밖으로 알려지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보도를 자제해달라는 요청까지 받았다.

사실 이날 소개하겠다던 기업은 장외에서 유통되는 주식이 없어 장외가도 형성돼 있지 않다. 상장 주관사 계약을 맺거나 상장 일정이 구체화된 것도 아니다. 현 시점에 투자설명회를 하는 이유에 대해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저금리 기조로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자 하는 투자자들의 욕구와 미래의 기업공개(IPO) 고객에 개인고객까지 잡고자 하는 증권사의 계산이 맞아떨어지면서 생겨난 세미나 자리였을 것이다.

기준금리 1%대 시대로 접어들면서 은행 예금보다는 리스크를 좀 감수하더라도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자본시장으로 돈이 몰려들고 있다. 특히 코스닥이 640선을 넘어서는 등 고공비행하고 있는 가운데 그 열기가 장외시장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장외시장에서 대어로 꼽히는 옐로모바일과 더블유게임즈는 지난달 초 똑같이 205만원으로 거래를 시작해 한 달 반만인 현재 각각 256만원, 236만5000원까지 오른 상태다. 장외 바이오주 중 대표 유망주인 신라젠은 첫 호가가 나온 작년 8월말 6250원이었던 주가가 지난달말 2만6500원까지 올라 4배 이상 뛰었다. 최근 조정을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2만원을 웃돌고 있다. 휴젤 역시 장외에서 2012년 6월 4만2500원으로 거래를 시작한 이후 올 들어 큰 폭으로 올라 이달 초 16만5000원을 찍었다.

비상장 주식은 리스크는 높지만, 진가를 알아보고 일찍 투자해 놓으면 나중에 상장했을 때 몇 배의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다만 이는 ‘흙 속의 진주’를 잘 알아보고 투자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무턱대고 투자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코스닥지수가 오르고 덩달아 장외 시장이 들썩일 때 유독 비상장사에 대한 투자권유가 눈에 많이 띈다. 얼마 전 금융감독원이 비상장 주식 투자 경보를 발령한 것도 이같은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쓰레기로 경유를 만드는 기술을 발명했다’, ‘해외에서 금광채굴권을 보유하고 있다’ ‘풍력·태양광 발전 및 에너지 절감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등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대단한 기술인 듯 포장해 투자자를 모집한 경우를 사례로 들었다. 주가가 앞으로 10배, 100배 갈 것이란 허황된 전망으로 투자자들을 현혹했다.

비상장사 상당수는 기업가치를 가늠하기 어렵고 사업 내용 파악이 쉽지 않다. 게다가 옆에서 ‘묻지마’ 투자를 부채질하는 불순한 세력들이 꼭 따라붙는다. 요새 장외 사이트에서 뜬다는 주식 게시판에는 “내일부터 폭등 시작” “실적 대박”“지금 안 사면 후회” 등 자극적인 표현들이 난무하다.

장외 시장을 보고 있노라면 2000년 IT 버블 붕괴가 떠오른다. 1995년 미국 웹브라우저 업체였던 넷스케이프의 상장을 계기로 시작된 IT 호황은 국내에서도 각종 닷컴 기업을 양산하고 투자자금을 블랙홀처럼 흡수했다. 하지만 2002년 버블이 꺼지면서 많은 기업들은 줄도산했고 투자자들도 떠났다. IT 버블 붕괴 악몽을 겪은 지 10년도 더 지났다. 유행도 돌고 돌듯이 거품도 마찬가지일까. 투자에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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