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건너 한국 땅에서는 정부가 마련한 세제 개편안을 두고 한바탕 소란이 일고 있다. 세수는 늘려야 하는데 세 부담을 어떤 계층에게 전가 시키느냐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이다.
그러나 세금이라면 피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 탓에 이런 혼란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경기가 어렵고 각국 정부의 재정여건이 취약하다 보니 미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서도 이런 모습들은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이 곳 미국에서는 멀리 보면 불어난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가깝게 보면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산층을 살리기 위해 어떻게든 세수를 늘려 보려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이를 막고 정부 씀씀이부터 줄이겠다는 공화당의 대립이 우리나라 만큼 치열하다.
원만한 합의와 타협이 쉽지 않은 것은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지만 이번 세제개편안을 둘러싼 우리의 모습이 아쉬운 것은 논쟁의 중심에 있어야할 가치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이 주장하는 법인세율 인하를 수용하기 위해 부자 증세를 연계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때에도, 최근 ‘대타협(그랜드 바겐)’을 요구하며 이를 철회하는 대신 법인세율 인하와 대기업에 대한 일시적 증세, 각종 감면 폐지를 제안했을 때에도 오바마 대통령이 담아내려는 정책가치는 하나였다. 바로 기업 주도로 일자리를 창출해 고용을 늘려 중산층과 빈곤층을 돕는 동시에 늘려야할 세수를 이들에게 전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반면 작은 정부의 원리에 철저한 공화당은 법인세율을 낮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되 악화된 재정여건을 개선시키는데에는 정부 재정지출을 줄이는 처방을 쓰자는 논리를 들이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그렇다보니 이를 정당화하겠다며 총대를 멘 청와대 경제수석이라는 인물은 세제 개편안의 정신을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내는 식으로 세금을 더 걷자는 것”이라는 부적절한 해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애당초 세금을 더 거둬 달성하고자 했던 가치보다는 수단만 고민했다는 자기 고백과 다름없다.
뿐만 아니라 이를 세금 폭탄으로 비판하며 정국 돌파의 수단으로 삼고자 하는 민주당의 태도도 실망스럽다. 복지 확대와 큰 정부를 지향해온 정당의 가치를 버리고 정략적으로만 접근하는 모습이다. 오히려 복지 확충을 위해 어떻게 균형잡힌 증세를 할 것인가 대안을 내놓아야 하는 게 민주당의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아버지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공약을 뒤집고 증세를 한 탓에 연임에 실패했다며 호사가들은 증세가 정권 창출에 적(敵)인양 얘기한다. 그러나 미국 정치 역사를 보면 이런 단순한 도식은 통하지 않는다. 감세주의자였던 로널드 레이건과 증세를 단행한 빌 클린턴은 모두 경제를 회복시켜 연임에 성공했다. 수단과 꼼수가 아닌 가치를 통해 국민들과 반대세력들을 설득하는 생산적인 논쟁이 되기를 바란다.